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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마늘밭 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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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마늘밭 가에서

입력
2009.05.0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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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뚝 그치자

마늘밭에 햇볕이 내려옵니다

마늘순이 한 뼘씩 쑥쑥 자랍니다

나는 밭 가에 쪼그리고 앉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마늘이 얼마나 통통하게 여물었는지 생각합니다

때가 오면

혀 끝을 알알하게 쏘고 말

삼겹살에도 쌈 싸서 먹고

장아찌도 될 마늘들이

세상을 꽉 껴안고 굵어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발견된 최고 오래된 고대문자인 수메르어로 씌여진 행정문서에는 여러 종류의 파와 마늘이 나온다. 여러 문서들에서는 수확량 등을 적어두었다. 그들이 적어둔 파와 마늘의 종류도 많아서 지금 우리들에게는 잊혀진 이름들도 상당하다. 수메르인들도 마늘을 먹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마늘을 좋아하는 행운을 가진 사람들이다. 건강에 좋다는 마늘. 하지만 마늘은 단순한 먹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안도현 시인의 마늘밭에 대한 시를 보라. 마늘밭 가에 쪼그리고 앉은 시인이 마늘에게 드리는 시. 생으로 씹으면 입 안을 알알하게 만드는 그 여리고도 단단한 땅의 자식.

마늘밭 가에 앉아서 땅 속에서 여물어 가는 것과 땅 바깥에서 허물어져 가는 세상을 생각하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길러낸 말. 그 말이 어쩌면 불안하게 들리는 것은 오랫동안 우리들은 마늘밭을 잊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을 수확철이 다가온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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