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ㆍ이순호 옮김/뿌리와이파리 발행ㆍ전 2권ㆍ각 권 2만5,000원
'인간은 태초부터 같은 인간을 먹이로 삼아왔다. 또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이 건조된 이래 지중해에는 언제나 해적이 존재했다. 중세 이후에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모두, 전쟁을 구실로 삼든 안 삼든, 때로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해적 행위를 일삼았다.'(상권 459쪽)
격랑이 이는 역사와 웅장한 드라마가 결합된 고전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삼국지'다. 그런 스케일의 고전이 서양에는 왜 없을까. 존 줄리어스 노리치(80)는 이 아쉬움에 해갈이 되는 작가다. 영국 외교관 출신의 역사학자인 그는 속도감 넘치는 필치로 서양사의 거친 흐름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서술해 왔다.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그의 <비잔티움 연대기> 는 1,123년 제국사를 6권의 서사로 압축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노리치의 2006년 작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원제 The Middle Sea: A history of the Mediterranean)가 번역 출간됐다. 지중해> 비잔티움>
지중해는 고대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 히브리 문명의 요람이다. 저자는 이집트와 페니키아 문명에서부터 현재의 유럽문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5,000년 역사를 가로지르며 정치, 종교, 문화, 교역 등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엮어낸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역사에 대한 깊이있는 안목도 돋보이지만, 이 책의 매력은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서술한 인간의 드라마에 있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 "(노리치는) 반만년 묵은 무채색의 바다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살아 움직이고 피가 튀고 논쟁이 벌어지는 유채색의 바다로 만들었다"고 썼다.
책은 33개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를 시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종점으로 삼았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폴레옹 원정 이후 서방을 계속 매료시킨 이집트를 출발점으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일단 물꼬를 터 놓으면 크레타, 미케네, 트로이 전쟁을 통해 로마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쉽게 놓을 수 있다… 대제국 세 개를 무너뜨리고 우연이든 필연이든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까지 제공했다는 점에서, 서구 세계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지중해 유역 국가들의 정치적 부침에 집중한다. 그래서 연대기적으로 기술된 세계사 교과서가 각 나라, 각 시대에 대해 서술하는 분량과 상당히 차이가 난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은 지나가는 말로 잠깐 언급되고 말고, 잔다르크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프랑스도 지중해에 접한 나라지만 정치적 비중이 지중해 연안이 아니라 북부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저자는 콘스탄티노플과 시칠리아, 키프로스, 몰타 등 교과서적 관점에서 변방에 불과했던 지역들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룬다. 지중해의 두 맹주, 비잔티움제국과 오스만투르크의 이야기를 다루는 단원도 상당한 부피를 차지한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지브롤터 해협과 수에즈 운하 등을 통해 지중해에 집착했던 영국은 주인공의 하나로 등장한다. 북아프리카도 상당히 중요하게 언급된다. 요컨대 이 책 속의 세계 지도는 지중해라는 중심축을 도는 지구의 평면도다.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아랍, 바티칸, 베네치아의 인간들이 그 평면도 위에서 유혈낭자한 전쟁을 벌이고, 숨막히는 외교전을 펼치고, 섬뜩한 음모를 꾸민다. 동시에 장사로 이윤을 남기는가 하면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다. 저자는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지중해를 주연과 조연이 수없이 교차하는 대서사시의 무대로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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