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엊그제 45개 그룹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에서 14개 그룹을 불합격 판정하고, 이중 부실이 우려되는 11개 그룹과 이 달 말까지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맺기로 했다. 금융회사에 500억원 이상 빚을 지고 있는 1,422개 대기업 중 400개사도 불합격 판정을 내려 구조조정을 진행키로 했다.
조선ㆍ건설사 등 산업별로 진행되던 구조조정이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셈이다. 구조조정 방향도 기업 살리기보다는 퇴출 등 과감한 옥석 가리기로 전환한 것이 눈길을 끈다. 김종창 금감원장이 "위기 극복을 위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존 가능한 기업은 살리고 도저히 안 되는 기업은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타당하다.
조선ㆍ건설사에 대한 구조조정은 부실채권 증가를 우려한 채권은행의 소극적 행보로 시늉만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기업 구조조정마저 건설ㆍ조선사의 전철을 밟으면 한국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대기업들은 여신규모가 크고, 임직원과 협력업체가 많아 옥석 가리기가 실패하면 경제 재도약은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 위기 이후에 한국기업들이 세계산업 재편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공염불로 끝날 것이다.
일부 경기지표 호전으로 구조조정 의지가 퇴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추락세가 둔화됐을 뿐이라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섣부른 낙관론보다는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자동차업계 3위인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세계 자동차산업이 격랑에 휩싸이는 등 실물경제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과감하게 대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엄정한 신용위험 평가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도 책임감을 갖고 구조조정을 독려해 시장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과도한 차입과 인수로 유동성이 나빠진 대기업들은 보유자산은 물론 우량계열사도 처분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나서야 한다.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부실기업 경영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장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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