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식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죠."
3일 오후 8시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비운의 영화인 '최후의 증인' 회고전을 가진 이두용(67) 감독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시절의 아픔을 떠올리는 주름진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이 감독은 '돌아온 외다리'(1974), '돌아이'(1985), '뽕'(1985) 등 액션영화와 시대극을 오가며 1970~80년대 충무로를 호령했던 노장. 전성기 시절 이 감독이 메가폰을 쥔 '최후의 증인'은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파헤치는 한 형사의 행적을 통해 우리 근ㆍ현대사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감독과 주연배우 하명중이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물색한 장소에서 촬영만 10개월을 진행한 대작이다. 촬영분량도 당시 충무로 평균(3만 피트)의 3배가 넘는 10만 피트에 달했다. 촬영기간도, 물량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당초 상영시간은 2시간 40분가량. 그러나 개봉을 앞두고 생각지도 못한 불운이 닥쳐왔다. 한 영화인이 "이두용이 빨갱이 영화를 만든다"며 청와대에 투서를 하면서 이 감독은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비극적인 근ㆍ현대사를 담으려던 영화가 역설적으로 질곡의 현대사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편향된 이념관은 철저히 배제하자고 시작한 영화예요. 워낙 촬영량이 많아 제작자도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했는데… 악의적인 투서였던 거죠."
'최후의 증인'은 검열당국과 제작자의 손을 거치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1시간 가량이 잘려나간 채 영화는 겨우 개봉했지만 소리소문 없이 스크린에서 물러났다. 이 감독도 개봉 첫날 극장에 가서야 훼손된 영화와 만났다. 결국 그는 상영 30분만에 "이건 내 영화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떨군 채 극장 문을 나섰다.
열성을 다해 만든 영화를 그렇게 잃은 그는 극도의 상실감에 빠져들었다. 아픔을 잊기 위해 32일만에 초고속으로 만든 영화가 그에게 베니스영화제 특별상의 영예를 안긴 '피막'(1980)이다. "영화와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어요. 10개월 동안 촬영한 영화는 그리 사장되고, 욕심을 버리고 만든 영화가 제 이름을 높였으니…."
감독에게 잊혀지고, 관객도 몰라봤던 '최후의 증인'은 박찬욱, 류승완 감독 등 후배 영화인들 사이에서 '전설의 명작'으로 회자되면서 다시 빛을 봤다.
2003년 한국영상자료원에 의해 원형에 가까운 복원(상영시간 2시간 34분)이 이뤄졌고, 이번 회고전에서 젊은 관객들과 만났다. "20여년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죠. 제 영화를 다시 찾아 관객에게 보여주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전주=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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