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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간신(奸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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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간신(奸臣)

입력
2009.05.0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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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생계형 범죄' 운운한 황당한 변론이 국민의 울화를 돋구었다. 그의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교수는 "얼마나 재산이 없고 청렴했으면 옆에서 참모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일을…"이라는 말도 했다. 옛 주군처럼 모시던 이를 충성스레 받드는 모습은 언뜻 가상하다. 그러나 이런 간교한 궤변에 귀 기울인 어리석음이 노 전 대통령의 실패와 추락을 재촉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조 교수는 그제 대검찰청 앞에서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간신과 암군(暗君)의 불행한 사랑을 닮은 듯하다.

■굳이 조 교수 얘기를 꺼낸 것은 오로지 그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검찰수사를 '인륜을 저버린 정치검찰의 무한도전'으로 규정하면서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눈에 띄어서다. 그는 닉슨 미 대통령과 콜 독일 총리 등을 예로 들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얽힌 닉슨의 불법 선거개입과 은폐 혐의를 후임 포드 대통령이 사면한 사실과, 콜 총리의 불법 선거자금 혐의를 관대하게 처리한 것을 본보기 삼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게 홍보수석 시절, 대통령의 뜬금 없는 '대연정' 제안을 옹호하던 그의 궤변을 떠올리게 한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편지'에서 2차대전 뒤 오스트리아와 1960년대 서독의 경험을 성공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외세 점령의 위기에서 임시방편으로 대연정을 택한 것이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막아 지금껏 이념 갈등에 시달린다고 반성한다. 서독도 베를린 장벽이 생기고 보수연정이 무너진 위기에서 대연정을 이뤘으나 의회정치와 국민통합을 해쳤다고 평가한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왜곡한 제안이 비판 받자, 조 수석은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고, 국민은 독재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 때, 조잡한 대연정 논리를 대통령 귀에 속삭인 이가 정치학자인 조 수석이 아닐까 생각했다.

■닉슨과 콜의 사례도 그럴 듯하지만, 대연정 논리처럼 역사적 사실을 어설프게 왜곡하고 있다. 닉슨의 '강요된 사임'은 더없이 가혹한 처벌이다. 또 이들의 '정치적 행위'는 노 전 대통령의 '개인적 비리' 혐의와 차원이 다르다. 콜 총리 사건도 통일과 유럽통합에 협조가 절실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짜고 옛 동독 석유회사를 프랑스 국영기업에 싼 값에 넘긴 대가를 받아 통일총선에 쓴 것이 기본 얼개다. 간교하나 허술한 방책으로 주군을 현혹한 간신은 맨 먼저 목을 쳤다. 어떤 지도자든 교훈으로 새길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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