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재ㆍ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외형상 지기 힘든 더없이 좋은 환경 속에서 치러졌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가 40%대에 육박할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고, 최악의 경기 침체 국면이 지속되리라는 전망을 뒤엎고 상승 무드가 형성되는 추세였다.
야당인 민주당은 정동영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로 분열되었고, 지지도는 10%대에 정체되어 있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 수사로 진보세력의 도덕성이 붕괴되었다.
여건 좋은데 참패한 한나라당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예상보다 큰 차이로 패배한 근본 원인은 당내 분열 때문이다. 지난해 18대 총선 때와 같이 공천을 둘러싸고 친이-친박 간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었기 때문이다. 170석이 넘는 거대 국회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고, 경제 살리기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패인이었다.
한편, '보수 가치'에 대한 공감대 부재는 한나라당 패배에 숨어 있는 핵심 요인이다. 최근 유권자들은 주요 현안에 대해 진보의 입장을 더 지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거 결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해 보면 첫째,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기침체와 사회 양극화 심화, 자영업자 및 중산층 붕괴 등으로 정부 여당에 대한 '기대 심리'가 급속하게 추락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심 이반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에게 압도 당한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차기 대권 후보들의 경쟁력에 대한 시험장이었다. 정당간 대결보다는 정당 내 내전의 성격이 강했고, 차기 유력 대권후보들이 직ㆍ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이들의 대선 경쟁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현재 권력이 차기 대권후보의 미래 권력에 압도 당해 '지역, 이념, 어젠다'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상처 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신속하게 회복하지 못할 경우, 조기 레임덕이 가시화할 개연성이 크다.
셋째, '보수'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시작한 것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작동되는 흐름이 확인되었다. 좁은 시각에서 보면 박근혜 전 대표가 승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보수 위기론'이라는 보다 큰 시각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영남을 넘어 수도권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할 입장에 있는 박 전 대표에게 한나라당의 수도권 참패는 강 건너 불 구경할 만큼 남의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경우, 현 지도부에 대한 대안이 뚜렷하지 않아 지도부 사퇴와 조기전당대회로 연결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친이계와 친박계 내부에서도 조기 당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 이후 처음 실시된 2005년 4ㆍ30 재ㆍ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0 대 23으로 완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기하면서 불리한 상황을 돌파하려 했지만 저항에 부딪쳐 실패했다. 열린우리당은 연이어 치러진 재ㆍ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급기야 대선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열린우리당 몰락의 출발점은 바로 재ㆍ보궐선거 참패였다.
열린우리당 몰락과정 잘 봐야
한나라당이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경고를 흘려 듣지 말아야 한다. 자기 독단과 자만에 빠진 파행과 대립의 정치를 거둬들이고 경제를 살리려면 그에 못지않게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친이-친박은 보수 정권 성공을 통한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도 '기형적 동거'를 청산하고 '상생적 동거'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게 안겨 줬던 압도적 지지의 선물을 거둬들이고 싶어하는 첫 신호탄임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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