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국회에선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 게다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됐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은 은행법 개정과 함께 정부 여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금산분리 완화의 핵심 법안이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은 각각 산업자본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지주회사와 은행의 지분 소유 한도를 모두 4%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 한도를 높여주면 대기업 자본이 투자돼 은행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권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금융에 대한 공적 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데다 자칫 은행들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 때문에 3월초 국회 정무위에선 한나라당이 이들 법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지만,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에선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김형오 국회의장이 4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직권상정을 피하기 위해 협상에 나섰다. 2월 국회 당시 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 및 은행 지분 소유를 10%까지 허용하자는 한나라당 개정안을 두고 여야가 논의한 결과 9%까지 이견이 좁혀졌는데도 한나라당이 정무위에서 원안대로 강행 통과시켰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9% 수정안을 본회의에 제출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소속 김영선 정무위원장이 반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김 위원장은 반대토론을 통해 "여야 원내대표가 마지막 공적을 남기려고 야합했다"고 성토했다.
본회의장은 술렁였고 결국 수정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표결에 참여한 한나라당 의원 141명 중 70명이 반대 또는 기권했고, 민주당에서도 33명 중 찬성은 19명에 불과했다. 홍 원내대표가 본회의 직전 의총까지 열어 표 단속을 했지만 별무소득이었던 것이다.
결국 여야 원내대표들이 타협과 야합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했지만, 은행법 개정안만 통과되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부결되면서 금산분리 완화의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게 됐다.
지주회사 형태인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등 대다수 주요 은행들에 대해선 산업자본의 지분 소유가 기존대로 4%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은행법 개정안이 발효되는 9월 이전에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할 방침이진만 당분간은 은행들 사이의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하게 됐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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