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윌버 지음ㆍ조옥경 등 옮김/한언 발행ㆍ544쪽ㆍ2만9,000원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체르노빌…. 현대가 만든 악마다. 아니면 진화가 만든 괴물일까? 인간은 이제 진보를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사상가 켄 윌버는 그러나 "역사는 굽이치며 흐르는, 초월을 향한 느린 여정"(45쪽)이라고 본다.
철학, 종교, 심리학, 신과학, 인류학, 사회학 등의 학문을 통합, '자아 초월 심리학'을 주창한 윌버는 이 책에서 인류가 걸어온 정신의 궤적을 추적한다. 저자는 "가장 낮은 동기 때문에 진보된 의식을 사용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최악의 경우로 본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인간에게만 있는 영(spirit)의 도약을 통해 '존재의 대사슬'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자기를 억압하거나 해방하려 하지 말고, 자기를 초월하여 스스로를 꿰뚫어 보아야만 한다"(498쪽)며 그 실천적 과제로 심리, 정치, 철학의 통합을 주장한다. 즉 해결책은 인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나 프로이트 보수주의자에게 있지 않고 불교, 영성, 해탈, 각성 등 비기독교적 문화의 시너지에 해법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자신이 전체로부터 분리된 개별자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대사슬에 다다르려는 느린 여정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논의는 구체적인 데서 출발한다. 그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착취라는 구조를 통해 작은 집단이 다른 이들의 노동으로부터 과분한 양의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며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논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은 그 방해물일 뿐이다. 저자는 문화를 두고 "죽음을 정복할 가능성에 대한 거짓말"(55쪽)이라고까지 한다. 이성적 언어가 결과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사교적인 신> <양자적 물음> 등을 저술한 윌버는 홈페이지(www.kenwilber.com)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 이 책은 상세한 원주에 버금가는 친절한 역주가 이해에 도움을 준다. 양자적> 사교적인>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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