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인들은 책임을 일단 정치인들에게 떠넘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온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바로 그 주장이다.
사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국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보다 절망을 줘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고, 또 오늘의 현실이다. 자랑스런 글로벌 1등 기업, 1등 제품을 다수 배출한 경제와는 달리, 우리 정치가 후진국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정치인들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실패가 늘 정치 때문일까. 정치인들은 경제인들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줘야 하고, 국회는 정부가 낸 법안을 항상 지체 없이 통과시켜줘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경제적 효율과 생산성의 잣대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그대로 들이댈 수는 없다. 국회 의원들이 경제의 뒷다리를 잡아선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대해 '경제의 시녀'가 되어달라고 할 수는 없다. 때론 정치가 멍석을 깔아줘도 경제가 스스로 뒷걸음질치는 경우(한국은행법 논란), 행정부가 국회를 얕잡아보는 경우(다주택자 양도세 논란)도 허다하다.
지난 주 28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동안 행정부를 포함한 경제계에선 경기회복의 첫번째 과제로 '추경 조속처리'를 꼽아왔고, 국회에서 심의차질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정치가 또다시 경제를 망친다'는 원성을 쏟아냈던 터였다. 곡절은 있었지만, 추경이 4월 국회를 통과한 것은 분명 잘된 일이다.
그렇다면 추경이 통과됐으니 경제는 이제 한고비 넘긴 걸까. 워낙 정부가 '경기회복의 최우선과제'로 강조해온 탓에, 국민들 사이에선 '추경기대효과'가 꽤 퍼져있다. 최근 체감경기지표(BSI CSI 등)나 주가 호전도 따지고 보면 추경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분위기가 이어지게 하려면, 이번 주부터 시작될 추경의 차질 없는 집행이 중요하다. 소중한 국민혈세가 지체와 낭비 없이 전 경제주체, 모든 경제현장 구석구석에 스며들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은 오로지 행정의 책임이며, 결코 '정치탓'으로 돌릴 수 없는 사안이다. 만약 집행의 문제로 추경효과가 조기 소멸된다면, 거꾸로 '정부가 경제를 망친다'는 소리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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