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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픽션 작가모임 소설집 '불사조의 아침'/ 짧지만 강렬한 닭들의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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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픽션 작가모임 소설집 '불사조의 아침'/ 짧지만 강렬한 닭들의 날갯짓

입력
2009.05.0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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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건 양념을 묻힌 닭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식당. 동도 트지 않은 희부윰한 신새벽에 볼품없는 수탉 한 마리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계생(鷄生)'을 반추하고 있다.

미국산 종자병아리로 태어나 열에 대여섯은 폐사한다는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고, 경상도의 한 가축농장에 자리를 잡았나 싶더니 계사에 '에이아이(AI)'가 퍼지면서 생매장될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고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빈사 상태가 된 닭도 기공의 힘으로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중국인 기공사의 마루타가 돼 기공사의 칼을 맞고 기절한다. 하지만 '계명(鷄命)' 역시 하늘에 달린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수탉은 한 닭발집으로 팔려오고, 해 뜨는 시간에 맞춰 빈틈없이 첫 울음소리를 내는 재주로 손님을 끌게 되면서 '불사조' 별명을 얻으며 귀한 몸 대접을 받는다.

한 수탉의 끈질긴 생명력을 감칠맛 나는 언어와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묘파한 소설가 구자명씨의 짧은소설 '불사조의 아침'이다. 구씨를 비롯해 권여선, 김병언, 김혁씨 등 '미니픽션 작가모임'의 네번째 작품집 <불사조의 아침> (나무와숲 발행)에는 닭을 주제로 한 소설 18편과 작가들의 자선작 47편이 실려있다.

원고지 10매 안팎 분량이라는 미니픽션의 장르적 특성은 압축적 미학을 낳는 동력이 된다. 22명의 작가들이 펼쳐보이는 미니픽션의 세계에는 발랄한 상상력과 배꼽을 쥐게 하는 해학이 가득하다.

중국산 가짜 달걀이 시중에 유통된다는 뉴스를 접한 닭들은 한 자리에 모여 "국적을 떠나 우리 정체성에 관한 문제요"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입생로랭사에 부탁해 자신들의 달걀에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 새겨넣자는 회의를 한다.(서지원의 '계공들의 비상회의')

선녀와 천상에서 해후했으나 노모 생각에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가 천제와의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 나무꾼은 밤낮으로 하늘을 쳐다보다 죽은 후 수탉이 돼 새벽녘만 되면 울고불고했다.(이진훈 '그거 아세요, 나무꾼과 선녀 뒷 이야기') 참신성과 발랄함, 기지와 같은 미니픽션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문학평론가 박병규씨는 "미니픽션의 부상과 확산은 우리시대의 신속성ㆍ조급성ㆍ피상성과 맞물려 있다"며 "우리의 삶과 사고와 언어를 일상 너머로 찬연하게 확장해가고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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