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두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잠을 잔다는 것이 우스운 일일지 모른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하루쯤 잠을 못 자는 게 대수도 아니다.
허재(44) 전주 KCC 감독은 챔피언 결정전(7전4선승제) 7차전을 하루 앞둔 30일 밤잠을 설쳤다. 애꿎은 담배만 물었다. 선수 시절 산전수전도 모자라 공중전까지 겪은 '천하의 허재'지만 이렇게까지 떨린 적은 없었다.
2005년 KCC 지휘봉을 잡은 허 감독의 챔프전 진출은 처음이다. 선수 때는 우승을 밥 먹듯 했지만 감독이 된 뒤로는 우승트로피를 품어보지 못했다. 지난 25일 4차전에서 이기면서 3승1패로 앞설 때만 해도 허 감독은 내심 우승을 낙관했다. 26일 5차전을 앞두고는 "우리가 우승하면 추승균이 MVP가 됐으면 한다"며 여유까지 보였다.
허 감독은 그러나 5차전에서 결승 버저비터를 맞고 무너진 데 이어 29일 안방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14점차의 대패를 당했다. 감독으로 첫 우승을 거의 다 잡았다 싶었는데 2경기 만에 모든 게 원점이 되고 말았다.
안준호(53) 삼성 감독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했다. 전술을 이렇게도 짜보고 저렇게도 짜봤다. 수비에 치중하다 보면 공격이 비고, 공격에 비중을 두다 보면 수비가 부실해질 것 같았다.
안 감독은 뼈 속까지 파란 삼성맨이다. 안 감독은 농구대잔치 시절 선수로, 프로 출범 이후로는 코치와 감독으로 우승을 일궜다. 삼성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우승컵을 보듬은 사람은 안 감독이 유일하다.
2005~06 시즌 이후 3년 만의 정상 복귀를 노리는 안 감독에게 이번 시즌은 더 없는 기회다. 정규시즌 4위로는 사상 첫 챔프전에 올랐기에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한이 될지도 모른다.
6차전까지 3승3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KCC와 삼성은 1일 오후 7시 KCC의 홈인 전주에서 최종 7차전을 갖는다. KCC가 이기면 통산 4번째, 삼성이 이기면 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한 남자는 웃고 한 남자는 울 수 밖에 없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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