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의 봄 햇살이 잔잔한 호수에 눈부시게 쏟아졌다. 말없이 호숫가를 거닐던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청했다. "올해는 사람들이 농구를 많이 보긴 봤나 봐요." 언제나 '소리없이 강한 남자'로 살아온 그에게 이런 관심은 낯설었나 보다.
부산 최고의 슈터였던 그가 연ㆍ고대와 중앙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모두 뿌리치고 변방이나 다름없는 한양대를 택한 지 16년. 홀어머니를 몸져눕게 했던 그 선택 이후로 그는 언제나 '소리없이 강한 남자'로 살아야 했다.
남모르게 한 발을 더 뛰어야 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더욱 크게 포효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남다른 감동을 맘껏 누렸다.
소속팀 전주 KCC를 우승으로 이끌며 2008~09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35). 우승과 MVP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그를 아직도 우승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4일, 경기 분당의 한 공원에서 만났다.
■ 이제 마음껏 '소리'를 내고 싶은 조연, 추승균
"농구를 시작했던 시절로 되돌아 간다면 다시 '소리없이 강한 남자'로 살고 싶을까요?"
곤란한 첫 질문에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저는 상관없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요."
추승균이 MVP를 차지하고 골대 그물의 마지막 가닥을 잘라내며 환호할 때, 아내 이윤정(30)씨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씨는 남편에게 "이제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여한이 없다"고 했다.
항상 '(이)상민이 형', '(조)성원이 형'의 그늘에 가려 조연 역할만 해야 했던 남편이 이번에는 그토록 든든하고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23년 전 남편을 여의고 홀로 추승균을 키워온 홀어머니는 이제서야 아들이 소위 명문대를 선택하지 않은 한을 풀어버릴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추승균의 MVP 수상은 그를 아끼는 이들에게 큰 행복을 선사했다. 언제나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 '감독이 가장 아끼는 선수'였지만 단 한 번도 주인공은 될 수 없었던 추승균. MVP 투표권을 가진 기자단이 67표 중 60표의 '몰표'를 줬던 건 그런 추승균을 향한 아낌없는 찬사나 다름 없었다.
■ 언제나 변함없는 강자, 추승균
추승균은 올시즌 71경기를 치렀다. 정규시즌 54경기에 이어 6강과 4강 플레이오프를 마지막 5차전까지 각각 치렀고, 챔피언결정전 역시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다. 전례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진기록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90kg 전후를 유지하던 그의 체중은 플레이오프 막판 85kg까지 내려갔다. "챔프전 6차전 때는 진짜 발이 안 떨어질 정도였죠. 도저히 힘들어서 수비를 못하겠더라고요."
팀의 맏형인 그는 그렇게 사력을 다했다. 시즌 중반만 하더라도 "올시즌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후배들의 투혼이 추승균의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추승균은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주의 프랜차이즈 스타요, 현대가(家)의 적자(嫡子)다. 어린 시절부터 현대 농구단을 동경했던 그에게 프로출범 직전이었던 1996년 말 현대에서 러브콜이 온 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았다.
추승균은 "현대에서 뛰게 된 것도, (이)상민이형, (조)성원이형과 농구를 하게 된 것도 모두 행복했어요. 농구는 보면서 배우는 것도 워낙 큰데 형들과 함께 뛰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인 거죠"라고 말한다.
현대의 녹색 유니폼은 KCC의 푸른색 유니폼으로 바뀌었고 정재근 조성원 이상민도 모두 떠났지만 추승균만은 여전하다. 프로농구 최초로 네 번째 우승반지를 거머쥔 '진정한 강자' 추승균. 30대 중반의 나이에 비로소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선 그의 미소가 더욱 찬란하다.
성남=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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