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어른들과의 만남에서 그분들의 방대한 기억력에 놀란 적이 있다. 마치 그때의 일기를 펼쳐놓고 읽는 듯했다. 지금은 타계한 강원용 목사님을 만났을 때였다. "일천구백육십사년 오월 사일 한시 삼십분… " 그분의 모든 말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억력까지 노쇠할 거라는 건 젊은이의 만용이고 착각이었다. 인터뷰를 할 생각도 잊고 그분의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누군가를 만난 호텔과 방 호수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함으로써 과거가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났다.
목사님의 타계 소식에 떠올랐던 것 중의 하나가 그분의 기억이었다. 낡고 묵은 책으로 몇 권이나 될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쯤 되지 않을까. 그 책들이 한번에 사라지는 그림이 떠올랐다. 시아버님의 기억력도 비상하다. 평소 안동댐에 대해 관심이 있던 터라 사전에서 읽어간 뒤였다. 안동댐 근처를 지날 때 아버님은 가이드처럼 댐에 관해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잃어버린>
건립 연도와 수몰 지역, 가구 수까지 사전의 내용과 똑같았다. 댐 건설 당시 한 명의 인부가 사망했다는 것은 새로 안 사실이었다. 반면 여자분들은 좀 다르다. 대충 그날의 분위기나 사건을 줄거리 식으로 두루뭉술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까맣게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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