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까운 친구 가운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함없이 지지하는 이가 있다. 그가 유행시킨 말처럼 아무리 깽판을 쳐도,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 이미 세상을 바꾼 때문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성장배경과 학력 등을 지닌 인물이 세상의 편견과 모순에 맞서 이기는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유복한 가정 출신에 좋은 학교를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부침과 얽힌 세속적 이해관계도 없다. 다만 인간 노무현의 도전과 성공이 사회를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큰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믿는 듯했다.
'영웅 대통령'과 나르시시즘 정치
사사롭게 여길 이야기를 앞세운 것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그를 이를 테면 '영웅 대통령'으로 우러르는 모습에 주목해서다. 흔히 자신들과 다름없이 평범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사랑한다지만, '영웅'의 업적을 미리 마음 깊이 새겼기에 마냥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함부로 용훼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영웅 만들기'가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영웅의식'을 키우도록 부추긴 게 아닌가 싶다. 영웅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뒤 새삼 완고한 편견과 장애에 부딪치면서, 갈수록 용맹한 투사의 모습으로 높은 벽을 넘어 오랜 역사의 축적까지 허물 기세로 돌진하기를 거듭했다.
그 즈음,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가 부시 미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틀로 분석한 글을 칼럼에 소개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좌절을 겪고 한계를 깨달으면서 건강한 자존의식을 갖는다. 그러나 극복할 수 없는 장애를 만났을 때 우회하지 않고 유아적 나르시시즘으로 퇴행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세상의 평가에 오만하게 맞서는 것이다.
이런 퇴행적 나르시시즘은 흔히 정치 지도자에게서 두드러진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면 범상치 않은 자기확신과 성취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에 빠진 지도자는 일반의 정서나 평가는 아랑곳없이 끊임없이 자기현시(顯示)를 추구하며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 등에 헌법의 제약까지 무시하며 메시아적 소명을 외친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적 환상의 발로라는 진단이었다.
대중은 세상의 편견과 장애를 넘어 의지를 관철하는 지도자에게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메시아적 구호와 다른 현실을 이내 깨닫기 마련이고, 지도자는 부시처럼 끝없이 추락한다. 더러 각성을 기대할 만 하지만, 나르시시즘의 저변에는 약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다. 이에 따라 실책을 인정하기보다 승리만이 대안이라는 신념으로 새로이 절묘한 구상에 매달린다. 이게 역사상 실패한 나르시시즘 정치의 공통된 행로라는 결론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도 그 불행한 길에서 아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나는 역사와 현실 앞에 무지하고 오만한 노 전 대통령의 어설픈 '영웅 대통령' 흉내에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 그에 앞서 DJ가 편견과 증오를 끝내 이겨낸 데 머물지 않고, 뿌리깊은 갈등과 분열을 딛고 국민을 통합하는 어질고 지혜로운 '현인(賢人) 대통령'이 되기를 막연하게나마 기대했다. 그러나 그도 강고한 지역의 이익과 사사로운 욕심에 얽매이는 한계를 망설임 없이 드러냈다.
진정한 국민통합 시대 열어야
이들이 결국 '당신들의 영웅'에 그친 데 비하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한때나마 더 폭 넓은 지지와 칭송을 받은 이들이 여럿 있다. 독재 과오 등에도 불구하고 훨씬 탁월한 업적으로 국민의 기억 속에 진실로 '영웅 대통령'으로 새겨진 이도 있다. 그런데도 국민이 DJ와 노무현을 선택한 것은 불행한 과거의 유산을 올바로 청산하고, 진정한 통합의 시대를 앞장서 열기를 바란 때문이라고 믿는다. 노 전 대통령의 새삼스러운 추락에 마냥 탄식하거나 분노하기보다 국민의 열망, 우리사회의 오랜 과제를 다 함께 되새기는 게 좋겠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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