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9재보선이 한나라당 참패로 나왔는데도 청와대는 말이 없다. 으레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형식적 논평마저 없다.
말은 없지만 속은 끓는다. 특히 경북 경주에서 친박 무소속 후보의 당선으로 이상득 의원의 힘이 빠지고, 박근혜 전 대표는 기세가 등등하게 된 상황이 뼈아프다. 당연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딱히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
이전에도 정권 초기 재보선은 모두 여당이 고배를 마셨고, 각 정권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놓고 돌파를 시도했다. 2004년 6월 광역단체장 4명을 뽑는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전패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후 3일 만에 '이해찬 총리'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어 정동영 김근태 의원을 입각시켜 사회전반을 개혁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강경 드라이브였다.
1998년 7월 재보선에서 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선거 7곳 중 2곳만 당선자를 내면서 한나라당에 졌다. 이후 10일 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최규하 전 대통령과 만찬 회동을 갖고 국민통합을 위한 악수를 했다. 화합모드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인적 쇄신도, 큰 틀의 정국운영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분간 이대로 가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무시 전략'이다. 침묵으로써 이번 선거와 청와대와의 연계성을 차단해 보겠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뒷짐을 지고 있으니 당 지도부도 선거 결과에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숨죽이며 시간 벌기에 나선 형국이다.
이 대통령은 선거 이후 첫 정치 일정으로 6일 박희태 대표와 회동하기로 했다. 여기서 당 쇄신책이 논의되겠지만 소극적인 '부분 수리' 정도에 그칠 것이 유력하다. 여권 관계자는 "MB(이 대통령의 이니셜)가 선거 결과는 당 차원의 문제로 국한시키면서 본인은 경제살리기를 위해 국정에 매진하는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는 부정적이다. 자칫 정치권의 모든 이슈가 박 전 대표 중심으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정쩡한 스탠스를 보이는 여권 지도부를 겨냥한 한나라당 내부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개혁성향의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은 당ㆍ정ㆍ청 쇄신방안을 여권 지도부에 전달키로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이한구(예결특위) 김영선(정무위) 변웅전(보건복지위) 이낙연(농수산식품위) 의원 등 국회 일부 상임위원장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핵심법안을 통과시켜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에 이낙연 위원장은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과 소통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입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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