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과 죽음을 물어다 주는 새 부엉이
풍향계가 가리킬 수 없는 방향으로 불어 간 바람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별의 사용 부족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천문학자가
2단 구구단처럼 외우는 황도 12궁
그때 천문학자의 눈가에서 별처럼 빛나던 물
봄의 대곡선, 여름의 대삼각형
가을의 사각형, 겨울의 다이아몬드
어느 날 불현듯 별을 좇아 수학을 버린 수학자가
아득한 밤하늘에 그리는 별들의 지도 위의 보이지 않는 꼭짓점들
그때 물병을 안고 등장하는 처녀
반인반수(半人半獸)를 사랑한 처녀
울다 잠든 천문학자의 얼굴을 물병자리 별처럼 바라보는
마법처럼, 찰박찰박 물소리를 음악처럼 연주하는
죽음은 없답니다 죽음은 껍데기를 벗는 일에 불과하지요
쿨룽 라마의 잠언을 詩처럼 읊는
전생에는 별들의 궤적을 짚으며 여러 生을 占치던
꼬끼오! 아침이면 닭의 모가지를 치던
●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옛날 옛적에 사람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지었다.
그리하여 별자리는 이야기꾼의 입술을 떠난 어떤 이야기를 영원히 반짝이게 하였다. 밤하늘을 보며 신화를 기억하고 전설을 펼치자 별자리는 나그네에게 길을 일러주는 지도가 되었다.
별자리는 인류의 아름다운 기억술이었다. 그런데 오늘밤에 나는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걸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알쏭달쏭 별별 이야기 속에서 찾아 헤매는데, 아, 그게, 그게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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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미 1972년 생. 2001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곰곰> . 곰곰>
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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