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심처(九重深處). 임금의 거처인 궁궐의 엄중함과 폐쇄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9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의 울타리 안에 몸을 숨긴 궁궐. 과연 당신에게도 궁궐은 이토록 멀기만 한 공간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궁궐은 더 이상 일상과 격리된 장소가 아닐 뿐더러 다양한 축제의 현장으로 자리잡는 등 훨씬 친근한 곳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 호젓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오후 9시까지 문을 열어놓거나(덕수궁) 유명 음악가들의 실내악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덕수궁)가 열리기도 합니다. 현대적인 설치 건축물을 품은 공간(경희궁)이 되거나 전통예술 상설공연(창덕궁)이 펼쳐집니다.
지난 봄비에 꽃비를 쏟아내고 신록으로 갈아입은 시내 주요 궁궐들은 답답한 도시생활을 잠시 잊게 해주는 도심 속 사랑스러운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지겨운 업무를 잠시 잊고 선인들의 지혜와 따뜻한 자연의 속내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궁궐 데이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궁은 가장 먼 덕수궁에서 창경궁까지 거리가 2㎞ 정도에 불과해 터벅터벅 걸어서 오갈 수 있을 정도다. 이른 아침 나서면 점심 먹기 전에 창경궁과 창덕궁을 돌아보고 근정전의 일몰과 덕수궁 석어당의 야경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각 궁 해설사들의 도움을 받아 잘 알려지지 않은 궁의 포인트들과 즐기는 노하우들을 담아봤다. 빠듯한 단체관람 일정 속에 알아 채지 못했던 숨은 비경, 궁궐의 '얼짱 각도', 사진 찍기 명당 등 이전과는 다른 궁궐 나들이를 위한 살아있는 정보들이다.
● 요건 몰랐지, 돌담길의 속살
"근처 직장인들에게 점심 후 산책 코스로 사랑 받는 곳이 있어요." 덕수궁 해설사인 권현주씨가 귀띔하는 석조전의 뒤로 돌아갔다. 석조전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아늑하면서 조용한 길이 나온다. 연녹색 나뭇잎과 활짝 꽃잎을 터트린 철쭉이 점점이 뿌려진 오솔길은 비경은 아닐지라도 시청에서 겨우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날 거라 예상하기 어려운 자연이다.
두 번째로 소개 받은 덕수궁의 숨은 매력 포인트는 석어당 주변의 '사진 명당'. 석어당은 유일한 중층 궁궐 건물로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꿇어 앉힌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석어당 담 너머에서 보면 살구나무와 석어당이 함께 렌즈에 잡히는 곳이 있어요.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폈다가 떨어지는 명장면이 연출되죠. 조명도 설치돼 있어서 해 떨어지면 그만이죠."
덕수궁은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과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고종이 차를 마시던 건물인 정관헌에 서양작가가 꾸며놓은 박쥐모양 장식, 석조전 앞의 서양식 분수대(최근 일제의 상징인 물개 조형물로 논란이 된 공간)와 휴식공간 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화가 어떻게 만난 공간인지 알고 보면 더 재미있죠. 뭐니뭐니해도 덕수궁의 백미는 야경이에요. 대한문에서 석조전으로 걸어오는 길의 조명을 보면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요. 비밀의 숲으로 걸어가는 기분도 들어요. 대한문 오른쪽 호수 앞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도 분위기 있죠."
● 교태전 쪽문에서 바라보는 후원
경복궁의 남모르는 재미를 찾으려면 일단 먼지 날리고 부산하기만 한 복원공사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경복궁이 공사 중이어서 볼 게 없고 정신만 산란하다며 발길을 돌리지만 복원 공사는 1990년대부터 진행하고 있던 것으로 2030년대까지 계속될 예정이어서 눈에 보이는 공사 규모는 아주 작다.
사실 경복궁은 왕이 일하는 공간(사정전)과 공식적으로 중전이 머무는 교태전까지 함께 있어서 왕조차 '호젓한 휴식과 거리가 먼 궁'으로 여겨온 장소이다. 그래서 덕수궁, 창덕궁과 달리 편하게 사색을 즐기거나 산책하기에 만만치 않은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질녘의 근정전과 모란이 어우러진 교태전 후원, 건청궁 뒤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기대 이상인 장소이다.
"아침에는 바람이 적어서 흔들리지 않는 경회루의 물을 볼 수 있어 거닐기 좋아요. 사진 찍는 분들 얘기로는 해질녘 빛이 아름답다고 하고요. 아무래도 요즘 같은 초여름엔 교태전 후원(아미산)이 꽃이 많아서 가장 예쁘죠."
경복궁 해설사 전진호씨는 자연과 닮아 있는 궁의 모습을 생각하며 거닐기를 권유한다. "근정전 회랑의 남서쪽 모서리에서 궁을 바라보면 산자락의 모습과 지붕이 닮아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다른 궁에 비해 경복궁은 입지 조건이 좋아서 음양오행에 맞춰 건물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음미하며 구경할 의미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전씨가 말하는 근정전의 '얼짱 각도'가 있다. 조금 다가선 채 45도 정도 정면에서 기울어져 사진을 찍으면 처마의 곡선이 훨씬 화려해 보인다. "근정전 정문이 아닌 옆문에서 용상 위를 바라보면 용이 보여요. 앞에선 각도가 맞지 않아 볼 수 없고요. 교태전 후원도 작은 옆문을 통해 바라보는 게 더 예쁩니다."
● 삼림욕과 사색을 하려면 창덕궁으로
전체 14만 평 중 10만 평이 숲으로 이뤄진 창덕궁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삼림욕 효과를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도심 열섬에서 벗어나기에 그만인 궁궐이다.
신윤성 관람안내지도 요원은 "창덕궁에 들어오면 전각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한 두 시간 천천히 숲을 걸어보는 게 좋다"며 "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가다가 청심정이란 작은 정자에서 연경당으로 내려오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가장 조용한 곳"이라고 말했다.
창덕궁을 잘 느끼려면 되도록 일주일 중 5일(화, 수, 금, 토, 일요일)을 피하는 게 좋다. 이때엔 하루 3,000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따라 우르르 몰려 다녀 자칫 잘못하면 놀이공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자유투어가 가능한 목요일이 그래서 호젓한 산책에 가장 적합한 날이다. 여기에 비까지 내려주면 금상첨화. 흐리고 비 오는 날엔 관람객이 크게 줄어 창덕궁의 매력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가족과 나들이를 위해 나오는 분들은 주로 경복궁과 창경궁으로 몰리죠. 이와 달리 창덕궁엔 홀로 사색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요. 노거수가 그늘을 드리운 연못가에 앉아 빗방울이 수면에 떨어지는 걸 바라보는 게 창덕궁의 진짜 매력이죠." 창덕궁 관리소 이창섭 팀장은 이와 함께 연경당 앞 물철쭉, 옥류천 개울의 은방울꽃 등을 남몰래 즐길 수 있는 구경 포인트로 소개했다.
● 통명전 뒤 툇마루를 찾아라
동물원으로 쓰였던 아픈 과거를 가진 창경궁은 당시에 많은 전각이 헐려나간 상처가 여전하다. 휑한 느낌이랄까. 아이들이 뛰어다니기엔 넉넉한 공간이지만 버려진 문화재에 대한 서글픔이 앞서는 곳이다. 건물로 인한 막힘이 덜하기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의 나들이에 가장 적합한 궁. 하지만 그만큼 그늘이 적어서 낮 시간을 피하는 게 요령이다.
창경궁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통명전. 왕비의 침소로 사용됐던 곳으로 신발을 벗고 전각 안으로 들어가 대청마루가 깔린 곳까지 직접 밟아볼 수 있다. 오래된 마루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촉감이 색다른 시원함을 준다.
귀찮다고 밖에서만 머물지 말고 꼭 발로 밟아보기를. 이 통명전의 뒤로 돌아가면 꽤 넓은 툇마루가 숨어 있다. 북향이어서 그늘이 시원하고 자리에 앉으면 키가 큰 앵두나무가 눈에 들어와 시원해진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 들어봐요, 역사의 속삭임
"기오헌(寄傲軒) 마루에 걸터앉아보세요.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의 못다 이룬 꿈이 절절히 전해져 옵니다."
문화자원봉사자 조동호씨(69)씨는 매주 토요일 푸른색 생활한복을 차려 입고 창덕궁에 입궁한다. 목에는 휴대용 마이크가 걸려있다. 어린시절 평생 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4ㆍ19세대, 8남매의 장남이란 현실은 그를 엔지니어로 살게 했다. 궁궐은 50여 년간 묻혀있던 그의 어릴 적 꿈을 이루어주었다.
"중학생 때 할아버지를 따라간 창경원 경춘전 앞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있어요." 정년퇴직 후 그는 한국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로 '우리궁궐지킴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됐고 '바로 이거구나!' 했다. 1999년 창립된 '우리궁궐지킴이'는 서울시내 궁궐을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들을 무료 안내해주는 순수시민단체다.
조씨는 궁궐은 최고의 휴식처라고 말한다. 특히 "덕수궁 함녕전 뒤뜰에 자리한 정관헌이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에겐 제격"이라고 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서 보낸 커피를 즐겨 마시던 이 곳은 붉은 벽돌로 장식된 벽면이 마치 현대식 카페를 연상시킨다. 덕수궁은 직장인들을 위해 3개월간 점심시간에 몇 번이든 드나들 수 있는 특별입장권을 3,000원에 팔고있다.
"자녀와 함께라면 경복궁의 경회루에 앉아 옛 집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경회루는 왕이 외국사신, 군신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던 2층 누각이다.
하루쯤 잘 정돈된 궁궐 나무들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매화나무, 향나무를 비롯해 식물학자들도 탐낼만한 희귀 식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창경궁에는 한국야생화를 모아놓은 100년 역사의 온실도 있다.
조씨는 "우리 문화 유산인 궁궐과 종묘가 시민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며 "궁궐 해설을 듣고 나면 사극도 훨씬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영명 인턴기자(이화여대 3)
■ 궁, 문화·공연의 열린 공간… 왕비님도 초대할까
"소격서를 혁파하옵소서. 소오~격서를…." 힙합 분위기가 가미된 힘 있는 조광조의 노래가 흘러 나오며 뮤지컬 '대장금'의 리허설이 한창인 가운데 한편에선 매주 수ㆍ토요일에 열리는 태권도 시범공연의 마무리 코멘트가 들려온다. "다음 태권도 문화공연도 많은 관람을 바랍니다."
매트를 정리 중인 태권도 시범단의 등 뒤로 보이는 가건물 안에서는 스커트 전시회가 한창이다. 건축물과 전시회를 설명하는 독일 건축가의 말에 카메라와 필기도구를 든 40여명의 단체 관람객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시장과 공연장을 갖춘 하나의 예술센터를 방불케 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이곳은 2009년 봄 서울의 경희궁이다.
서울의 고궁이 조선왕실의 문화를 간직한 역사 탐방의 공간을 넘어 문화예술 체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궁을 가까운 삶의 휴식처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단순히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궁중의례 수준이 아니다. 국악, 클래식, 뮤지컬 공연은 물론 해외 패션 브랜드의 설치 작품까지 고궁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에 익숙한 문화예술을 선보이며 문호 개방 폭을 키우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경희궁이다.
1일부터 24일까지 경희궁 숭정전에서는 조선 중종기의 여인 대장금의 사랑과 열정을 그린 뮤지컬 '대장금'이 지난해 가을에 이어 다시 공연된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과 음악이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궁의 운치와 묘한 조화를 이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얻은 작품이다. 리사, 윤희석, 강태을, 한지상 등이 출연한다.
최종 리허설이 진행된 지난달 29일 오후 숭정전에 펼쳐진 모습은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공개 연습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시민에 개방된 장소인 숭정전이 공연장으로 쓰이는 까닭으로, 대중에 한층 가까워진 경희궁의 오늘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하는 런스루(run through) 연습 중이지만 음향 스태프들은 고궁을 찾은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궁 안내자의 역할도 겸해야 했다.
올해 경희궁은 해외 의류 업체에까지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는 지난달 23일 '프라다 트랜스포머'라는 건축물을 개관했다. 스커트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6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건축물 시공 과정에서 일부 문화재 훼손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관람객들은 이 같은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궁의 문턱이 낮아지는 게 반갑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29일 스커트 전시회에서 만난 남궁 설(27ㆍ인천시)씨는 "고궁은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공간인 게 사실이지만 이 행사를 보러 나온 김에 경희궁을 돌아보면서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궁의 변신의 가장 큰 배경에는 무엇보다 2일부터 10일까지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열리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있다. 매년 봄 주제를 달리해 열리던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지난해부터 '서울의 역사성과 전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궁을 테마로 음악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초부터 일반에 개방하기 시작한 창덕궁 후원처럼 궁이 대중과 가까워지면서 하이서울페스티벌 프로그램도 점차 세밀해져 가는 추세다.
7일 창덕궁에서는 판소리 명창과 국악기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국악한마당 '배꽃향기 바람에 날리고'가 낙선재 앞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소나무숲과 영화당, 연경당 등에서도 '소리사위를 펼치다'라는 제목의 공연이 마련된다. 시민에 문을 활짝 연 궁의 주요 공간을 구석구석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연경당에서는 지난달 16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와 4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주관으로 전통예술 상설 공연이 열리고 있기도 하다. 10월27일까지 계속된다.
덕수궁에서는 역시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국악과 재즈오케스트라, 퓨전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는 '대한제국 모단(modern)음악회'가 열린다. 6일부터 9일까지 매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열린다.
국악실내악단 소나기프로젝트, 퓨전음악그룹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등이 출연한다. 5일에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막을 여는 '고궁 가족음악회'도 준비돼 있다.
그밖에도 창경궁 양화당 앞에서는 7일부터 9일까지 오정해, 이자람 등 신세대 국악인들의 공연 '21세기 여민락'이 열린다. 하이서울페스티벌 외에 어린이날 경복궁 수정전에서 진행되는 초등학생 대상 '훈민정음 서문쓰기' 등 각양각색의 체험 행사도 마련돼 있다.
이들 행사는 유료관객만 입장 가능한 뮤지컬 '대장금'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궁 입장료만 지불하고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 5대 궁서 못 느껴본 왕조의 흔적 "여기있네"
서울에는 5대궁으로 부르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경운궁), 경희궁 외에도 조선 왕실과 관련된 유적이 몇 곳 더 있다. 번요하지 않은 곳에서 왕조의 흔적을 느끼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 운현궁
고종이 보위에 오르기 전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즉위 후에는 대원군이 머물며 조선 강토를 실질적으로 경영한 곳이다. 건축물들은 양반가의 가옥 구조를 하고 있으면서도 왕실의 위엄까지 갖추고 있다.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위압감을 주는 전각으로 들어찬 궁궐과 달리 경내 전체가 단아한 기품을 풍긴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걸어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일반인의 관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일요일에는 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가 수시로 열린다.
커피 한 잔 값이면 서너 식구가 함께 찾아가 반나절 정도 느긋함을 맛 볼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하며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관람료(성인) 700원.
● 칠궁
청와대에 인접해 있어 최근에야 개방됐다. 칠궁만 따로 관람할 수는 없고 청와대 관람자에 한해 이곳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칠궁은 조선조 역대 제왕(사후 추존된 왕 포함)의 어머니 중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이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 등 7개 전각이 모여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조선의 엄격한 위계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멀지 않은 곳에 북악산 산책이 가능한 창의문이 있어 하루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알맞다. 관람하려는 날부터 10일 이전에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를 통해 관람 신청을 해야 한다. 관람료 무료.
● 종묘
서울에서 가장 시끄러운 종로 거리에서 대로 하나만 건너면 깊은 수림에 싸인 종묘를 찾을 수 있다. 이곳은 조선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재궁, 정전, 영녕전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웅장한 전각도 볼거리지만 나무그늘이 드리운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 보는 것도 종묘 나들이에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벤치에 앉아 새소리를 듣거나 월대의 돌덩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책을 읽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화요일 문을 닫는다. 관람료(성인) 1,000원.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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