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부르다레 지음ㆍ정진국 옮김/글항아리 발행ㆍ384쪽ㆍ1만6,500원
'라파타파타파타파타팡 소리로 끝없이 이어지고 멈췄다 다시 길게 이어지는데, 밤이 깊도록 거대한 기계가 여기저기서 돌아가는 듯하다.'
1903년 이른 봄, 한양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된 프랑스인 에밀 부르다레에게는 골목에 감도는 정겨운 다듬이질 소리조차 '이상한 굉음'으로 들렸다. 고고학자이자 철도 기술자문 역으로 낯선 땅을 밟게 된 그에게 '코레'는 불결한 백성에, 문화는 몽매하며, 왕조는 열강의 침탈에 저항조차 못하는 한심한 약소국에 불과했다.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은 이 완전한 '이방인'이 1903년을 전후해 4년간 조선에서 머문 뒤 1904년 프랑스에서 펴낸 일종의 여행기이다. 약소국에 대한 상투적 동정보다는 철저한 이방인으로서의 시각이 오히려 당대에 대한 참신한 묘사로 이어진다. 대한제국>
한양의 인상
책에 묘사된 한양은 '희한하고 불편한' 도시이다. 다듬이질 소리에 잠을 설친 다음날 전차를 타고 시내 구경에 나서는데, 레일 사이 진창이 된 샛길엔 황소와 보행자, 어린이와 주정꾼, 무심한 인파가 뒤엉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양반들이 쓴 갓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굉장한 모자'이다. 하지만 점잖은 양반들이 신식 제복을 너무 꼭 끼게 입고 망아지 안장 머리를 엎드리듯 엉거주춤 붙잡은 채 망아지와 함께 마부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중인 이상인 여인들의 옷차림은 단정하지만, 멀쩡한 여자가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짧은 '볼레로'(저고리)를 입고서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웃음을 참아낼 유럽인은 거의 없다. 하녀들의 특이한 차림이다.
흙담과 지푸라기로 쌓은 집의 상태는 한심하고, 객줏집 앞에 쭈그린 사람들은 '항상 명랑하며 불결한 법이 없는' 일본인에 비해 끔찍하게 지저분하다. 대한문에서 파수를 보는 병사들은 기강이 없어 장난질로 무기를 휘두르기도 하며, 하인들도 마찬가지다.
고종 황제 알현
저자는 의례적인 수준에서 고종 황제를 알현했다. 황제 알현은 대기-알현-여흥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알현 장소에서 황제가 좌정한 자리는 완전히 찬란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단출하다. 황제의 상징색인 황색 비단보를 덮은 네모난 소반과 깊숙한 구석에 놓인 커다란 자수병풍이 무대의 전부였다. 병풍 뒤에 환관 등이 숨어 있다.
황제는 통치에 대한 근심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덕담 몇 마디를 건넸다. 태자도 여기에 감사와 염원의 말을 덧붙였다.
알현단은 소박한 대기실 겸 식당으로 돌아와 유럽식의 훌륭한 요리에 최고급 포도주를 곁들여 조선 하인들이 매우 정확하게 '서빙'하는 식사를 하며 궁중 무용단의 공연을 봤다. 붉고 푸른색의 보기 좋은 옷을 입은 젊은 무용수들은 그렇게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안타까운 오해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당대 조선 풍속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곳곳에 안타까운 오해도 없지 않다. 일례로 저자는 '그들(조선인)의 식탐은 끝이 없다. 이런 습관은 어려서부터 길들여진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혹 아이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아 해도, 무릎에 눕히고서 입에 틀어넣는다. 이런 이유로 배가 굉장히 불룩한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작은 요괴 같은 모습이며 다리는 배 밑으로 숨어버렸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식탐이 가혹한 춘궁기를 겪으며 단련된 서글픈 생존본능이며, 맹꽁이처럼 부른 아이들의 배가 부황 때문일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런 오해는 온돌을 연기로 집을 뒤덮이게 만드는 형편없는 시설로 묘사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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