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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피의자' 노무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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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피의자' 노무현 이후

입력
2009.05.0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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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30일 아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뒷모습을 본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봉하마을 집 앞에서 그는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면목이 없다"고 했다. 재임시절의 당당함이나, 퇴임 후 한때의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안타깝다고 했지만, 그 감정의 갈래는 여럿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 회원들은 이번 사건을 이명박 정권과 검찰의 '노무현 죽이기'로 규정하고 있다. 안타까움을 넘어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측근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졸렬한 정치보복",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라고 검찰 수사를 비난했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수뢰 의혹을 "생계형 범죄"에 비유하는 궤변으로 노 전 대통령을 오히려 욕되게 했다. 일반 국민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주장하는 태도다. 우상의 붕괴 앞에서 추종자들이 보이는 아노미 현상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이들은 이번 수사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먼지털기'라고 주장한다. 공교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 정권과 검찰에 그런 의도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들은 단순히 먼지털기 차원으로 돌릴 만큼 가볍지 않다.

반대쪽이 말하는 안타까움은 이와는 다른 차원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 또 검찰 앞에 서게 돼 국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유력 보수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하라고 주장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거봐라 잘난 척하더니 꼴 좋다'는 투다. 보수세력은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혀온 '부패 콤플렉스'를 벗어 던질 호기로 인식하는 듯하다. 나아가 이참에 진보세력을 일거에 쓸어내겠다는 기세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좌파는 우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지도 않았고 무능력했다"며 "좌파운동을 접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대다수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이와는 또 다르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측근들의 비리 혐의에 실망하고 비판하면서도, 이를 빌미로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모조리 무시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절차가 시작된 이 시점에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이처럼 이성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양 극단으로 갈려 감정적 언사로 갈등을 증폭시켜선 안 된다.

노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비리 혐의는 검찰이 강조해온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그리고 진보든 보수든 권력은 부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고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시와 견제를 강화할 뿐 아니라,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구조의 개혁도 논의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비리와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되, 그들이 내세우고 많은 유권자들이 지지했던 가치들마저 비웃음 거리로 만들어선 안 된다. 진보개혁 진영도 달라져야 한다. 과오는 과오대로 인정하고 근본적인 쇄신에 나서야 한다. 음모론적 시각으로 사안을 재단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설 자리만 더욱 좁아질 것이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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