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비무장지대를 무서운 곳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는 자연이 숨쉬는 곳이랍니다. 두루미와 꽃, 철조망에 켜놓은 조명에 달려드는 벌레까지 모두 아름답습니다."
북한이 코앞인 경기 파주시 군내면 비무장지대(DMZ)내 대성동초등학교에서 28일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마이크에 닿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선 어린이는 이 학교 5학년 1반 김소연양.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하는 독후감은 사진작가 최병관(59)씨의 <울지마, 꽃들아> (보림 발행)를 읽고 쓴 글이다. 울지마,>
김양의 발표를 듣던 최씨는 "처음 출판사에서 어린이용 사진집을 내자고 제의했을 때 거절했다"고 말했다. "내 사진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이들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배우는 데 내 사진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책을 내기로 한 뒤 그는 "아이를 너무 아이로만 보지 말라"며 어린이용 사진집과는 거리가 멀다며 6ㆍ25전쟁의 상흔이 생생한 사진들을 빼려는 출판사를 오히려 설득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1997~98년 비무장지대 249.4km를 3차례 왕복하며 동강난 국토의 허리를 필름으로 기록했다. 만 24개월의 철책 생활, 최씨는 "군대 생활을 한 번 더 한 셈"이라고 말했다.
<울지마, 꽃들아> 는 이때 찍은 10만 여 컷의 사진 가운데 어린이들을 위해 60장을 가려 뽑은 것이다. 야생화와 녹슨 탄피, 눈꽃이 핀 철조망 사진 곁에 비무장지대에 대한 최씨의 짤막한 글이 실려 있다. 울지마,>
"말 못할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지뢰를 밟은 적도 있고 500mm 렌즈를 무기로 오인한 북한군의 총격을 받을 뻔한 적도 있어요. 저 한 명에 12명의 수색대가 따라다녔는데, 소변 보는 것까지 일일이 무전으로 보고하는 거예요." 최씨는 '작품을 찍다 죽어도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몇 개월을 군인들과 한솥밥을 먹은 뒤에야, 비무장지대의 비경(秘景)과 비경(悲景)을 자유롭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는 직접 밟아보지 않고는 말하기 힘든 곳입니다. 전쟁의 잔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가도, 이내 파괴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 곳이죠. 어린이들이 그렇게 소중한 공간인 비무장지대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파주=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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