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소속 알렌 스펙터(79ㆍ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다고 28일 밝혔다. 스펙터 의원의 이적은 상원의원의 '정당 바꾸기'가 흔치 않은 미국 정치 풍토에서 이례적인 일인데다, 민주당의 '슈퍼 60석' 달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가톤급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펙터 의원이 가세함으로써 민주당의 상원 의석은 전체 100석 중 59석으로 늘어났다. 야당인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 전략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슈퍼 60석에 단 한 석이 부족하다. 지난해 11월 선거 이후 재검표와 법정 소송 등으로 5개월째 승부가 나지 않고 있는 미네소타 상원의원 자리가 앨 프랑켄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결론 날 경우 민주당은 꿈에 그리던 60석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공화당의 '장광설 연설'을 막을 수 있는 '토론 종결'을 표결에 붙일 수 있고, 이어 해당 법안의 찬반 투표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법안과 고위급 인사 인준 등을 민주당 의지대로 끌고 나갈 수 있다. 현재 상원에는 의료보험제도 및 노동정책 개혁, 기후변화 협약 등 양당이 첨예한 의견차를 보이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스펙터 의원의 민주당 입당으로 그렇잖아도 파당정치로 치닫고 있는 양당의 정파적 대립구도가 더욱 격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스펙터 의원은 수개월 동안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포함한 상원의 민주당 지도부와 당적 변경 문제를 논의했고 특히 당적 변경을 발표한 28일 오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언론들은 스펙터 의원의 가세는 29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하면서도, 격분하고 있는 공화당으로부터 극렬한 반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은 엄청난 부담이라고 전했다.
스펙터 의원이 당적 변경을 결심한데는 재선 가능성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 스펙터 의원은 내년 공화당의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에서 완패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는 이날 성명에서도 "공화당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는 당적 변경이 가져오는 파문을 의식, "개별 법안에 대한 기존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거수기 역할을 하는) 민주당의 60번째 의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에서 중도파로 분류되는 그는 2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상원의원 세명 중 한명이다.
CNN 방송에 따르면 상원의원 선출을 직접 선거방식으로 바꾼 1913년 이후 현역의원의 당적 변경은 모두 열세차례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민주당에서 부통령 후보까지 지낸 조 리버맨(코네티컷) 의원이 2006년 8월 당내 예비선거에서 패하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 당선된 뒤 지금까지 무소속으로 남아있다. 2001년에는 제임스 제퍼즈(버몬트) 의원이 공화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변신하면서 상원의 역학구도를 한번에 뒤엎어버렸다.
2000년 선거 결과 양당이 50석씩 양분,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함으로써 아슬아슬하게 공화당 우위가 유지돼 왔는데, 그의 탈당으로 민주당 50석, 공화당 49석으로 민주당 우위 구도로 뒤바뀌었다. 상임위는 물론 산하 소위원장까지 모든 자리를 다수당이 갖도록 돼있는 규정에 따라 공화당은 그의 탈당으로 상원 권력을 민주당에 넘겨줬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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