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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은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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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은법 개정

입력
2009.05.0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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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헌법 상에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운동이 불붙기 시작하던 1987년 7월 28일. 한은 부산지점 행원 36명은 독립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본점에선 1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당시 박성상 한은 총재는 국회 재무위원회에서 "현행 제도로는 정치권력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은이 민주화 열풍을 타고 정부에 한은법 개정을 위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한은은 재무부장관이 맡고 있던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한은 총재가 겸임하고, 통화 관리와의 상호 보완을 위해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은 한은에 둬야 한다며 홍보전에 돌입했다. 한은이 독립투쟁의 깃발을 쳐든 것은 금리 등 통화신용정책에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가 시어머니처럼 군림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경제민주화와 관치금융 청산을 위해서는 독립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3공화국 이후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추락한 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비원(悲願)도 작용했다.

▦재무부는 행정관청인 금통위가 특수법인인 한은 내부에 있는 것은 법리적으로 모순이라며 반격했다. 국가라는 인(person)의 팔(organ)이 한은이라는 인의 몸통 속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연방 관청인 연방준비이사회와 민간법인인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을 합쳐 연방준비제도, 즉 중앙은행이라고 하듯이 한국도 금통위와 한은을 합쳐야 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1차 공방은 초반에 민주화 바람을 탄 한은이 우세했지만, 재무부의 반격으로 휴전으로 끝났다. 95년 정부의 선공으로 시작된 2회전은 한은의 총공세로 정부가 후퇴했다.

▦3차전은 97년 외환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금융개혁법 처리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됐다. 하지만 금융개혁법 처리는 여야 이견으로 표류하다가 구제금융을 제공한 외세(국제통화기금)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은과 정부(금감원 포함)가 최근 한은에 대한 금융회사 단독 검사권 부여 문제로 네 번째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선제적 위기수습을 위해서는 독자적 검사권이 필요하다는 한은 논리는 타당성이 있지만, 통합감독체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감독기구 개편 논의가 과거처럼 논리와 이성의 대결이 아닌 떼와 오기의 싸움으로 점철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협력과 공존은 요원해 보인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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