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금융회사 단독 조사권을 주느냐 마느냐를 놓고 거센 싸움이 붙었다. 한 쪽에 한은이 있고, 다른 쪽엔 기획재정부 금융위 금융감독원이 있어 언뜻 한은이 밀리는 게임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중앙은행의 기능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 부각됐고 여론도 정부보다 한은에 힘을 싣고 있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은에 물가안정 책임과 함께 금융시장 안정의 책무를 부과하기로 했으면, 당연히 그를 위한 독립적 권한도 함께 주는 게 옳다.
엊그제 국회 기획재정위는 소위에서 통과된 한은법 개정안 처리에 앞서 윤증현 기재부 장관, 이성태 한은 총재, 진동수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감원장 등 금융 '빅4'를 불러 의견을 듣는 이색적 이벤트를 가졌다. 우선 이해가 다른 관련 부처의 수장을 불러 공개적으로 입장을 청취한 게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번 대립을 흔히 '밥그릇 싸움'이라고 간단히 규정하는 견해도 적지 않은데, 그런 상투적 접근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기 힘든다.
해답은 한은의 기능에 금융시장 안정 역할을 추가한 취지에서 구하면 된다. 이는 감독 당국이 그 동안 일을 잘못했거나 덤벙덤벙해 금융회사의 자산 건전성 악화를 조장하고 로또 같은 금융상품을 방치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그런데도 금융위나 금감원 등이 기존의 공동조사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다. 은행권 역시 시어머니가 늘어난다고 반발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그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낯을 들기 어려울 것이다.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게 그들의 습성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한은이 자랑스럽게 단독 조사권을 요구할 처지도 아니다. '신의 직장'에 걸맞은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책임문제가 불거지면 '권한이 없다'는 변명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소홀히 해온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한은이 명분에 버금가는 지지를 얻지 못하고 단독조사권 논란이 밥그릇 챙기기 투정으로 매도되는 이유다. 그래서 단독 조사권은 부여하되 권한의 한계와 남용을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조사권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과 봉사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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