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수중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수중보

입력
2009.05.02 03:51
0 0

'앞니 빠진 갈갈이 봇도랑에 가지 마라, 붕어새끼 놀린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앞니를 갈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르며 놀려댔다. '갈갈이'는 '갈가지', '놀린다'는 '놀란다'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사전에서 '갈가지'는 '개호주'(호랑이새끼)의 강원도 사투리로 나오지만, 유년의 기억에 새겨진 의미와 어울리는 '갈갈이'는 어디에도 없다.

피라미를 뜻하는 '갈가리'나 가을걷이의 딴말인 '갈갈이'만 있을 뿐이다. 기억의 올바름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라고는 <개그 콘서트> 의 인기코너였던 '갈갈이 패밀리' 뿐이다. 앞니가 튀어나와 무 갉기 실력이 뛰어난 '갈갈이'가 앞니가 빠졌을 때를 생각해야 '갈갈이'의 말맛이 산다.

■'갈갈이'도 그렇지만 '봇도랑'의 뜻도 오랫동안 어렴풋했다. 미꾸라지를 잡고, 멱을 감고, 얼음을 지치는 등 늘 봇도랑과 함께 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봇도랑'이 보(洑)로써 가둔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임을 깨달은 것은 한참 철이 들고 난 뒤였다. 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늦어도 조선시대에는 관개용수 확보의 가장 흔한 수단으로 쓰였다. 강물을 둑으로 막으면 수위가 최소한 둑 높이에 이르게 되고, 그 옆으로 물길만 내면 얼마든지 논에 물을 댈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재료는 돌에서 콘크리트로 바뀌었지만 보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강 상류의 보 가운데는 약간 낮게 수로를 만들어 물을 흘려 보냄으로써 보가 물보다 높이 드러나 다리 역할을 겸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여름철 멱 감는 아이들의 다이빙대로도 쓰였다. 그러나 대개는 물이 보를 타넘고 흐르게 만들어진 수중보(水中洑)여서, 어지간한 가뭄이 아니고서는 보가 물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야 물고기가 자유로이 오르내리고, 물이 고여 썩지 않을 수 있었다. 수중보 아래 바닥은 깊게 패이게 마련이었고, 침식된 콘크리트와 함께 복잡한 구조를 이루어 물고기들이 몰리는 천렵 명소가 됐다. 물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강도 살렸다.

■'4대강 살리기'도 16개의 수중보 설치가 핵심이다. 물그릇이 커지면 당연히 많은 물을 가둘 수 있다. 지난 겨울의 가뭄은 수자원 확보 필요성을 뚜렷이 일깨웠다. 많은 물이 갇힌 상태에서 유속이 느려지면 홍수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은 제방 정비 등의 병행 사업을 고려하면 기우에 가깝다. 유속 저하가 때로는 홍수 방지책이 되고, 토양침식을 막는 득책도 된다. 갇힌 물이 썩기 쉽다는 건 상식이지만, 적절한 준설과 물갈이로 능히 대처할 수 있다. 일방적 찬반 논란보다 많은 물을 맑게 가두고,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 논쟁'에 들어가는 게 낫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