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단일화를 함께 이룬 민주노동당과 김창현 후보 공동의 승리, 더 나아가 노동자와 서민의 진보정치를 바라는 울산 북구 주민들의 승리입니다."
진보신당의 국회 진출의 꿈을 일군 조승수 울산 북구 당선자의 소감은 '진보진영 단일화'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선거를 불과 3일 앞두고 이룬 후보 단일화는 그만큼 당선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고, 이 때문에 그의 국회 복귀 과정은 극적이었다.
조 당선자의 국회 입성은 처음이 아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 후보로 울산 북구에 출마, 권영길 의원과 함께 민노당의 첫 지역구 의원으로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한 뒤 그 해 동료 의원들이 뽑은 최우수 국회의원에 선정되는 등 진보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6년 9월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16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고, 지난해에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종북주의' 논란을 일으키며 진보신당이 민노당에서 분당하도록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전력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물리침으로써 진보정당을 창당 1년 만에 국회에 진출케 만든 일등공신으로 거듭났다.
조 당선자는 1982년 동국대 재학 중 교내시위를 주도해 구속됐고, 83~86년 인천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주도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95년 울산 시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본격 입문한 데 이어 98년 지방선거에서 민노총의 추천으로 울산 북구청장에 전국 최연소로 당선, 전국적 인물로 부각됐었다.
▦울산ㆍ45세 ▦동국대 생명자원경제학과 ▦울산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울산 북구청장 ▦민노당 창당발기인 ▦17대 국회의원
김회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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