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즐거운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등굣길 발걸음이 가볍다. 수업은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해야 한다. 그래야 공부하고 싶어진다. 학부모와 학생은 학교와 교사를 믿고, 교사는 헌신적 가르침으로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 지원이 더해지면 공교육에 토실토실 살이 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로막는 게 있다. 대학입시다. 대입은 한국 교육을 규정한다. 초ㆍ중ㆍ고교 교육은 이 '영원한 갑' 앞에서 죄인처럼 옴짝달싹 못한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한 인간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최우선 잣대가 된 학벌주의 사회의 현실 앞에서 백년대계의 가치는 빛이 바랬다. 학교는 입시 공부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일 뿐이다. 그저 다녀야 하니까 다니는 학교고, 들어야 하니까 듣는 수업일 뿐이다.
대입과 공교육을 먼저 확 바꿔야
그런 풍토에서 사교육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은 무한대에 가깝다. 사교육은 자녀를 남보다 더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의 강박관념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불안감도 조장한다. 새 교육 정책과 제도가 나오면 학부모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사교육 업체들이 주최하는 각종 설명회에 가보라. 그들은 언제나, 그것이 틀리든 맞든, 자신 있는 태도로 교육 정책을 분석하고 방향과 결과를 예측한다. 체계적인 것처럼 보이게 각종 수치 분석도 제공한다. 반면 학교는…. 학부모들은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불안해져서 의존도는 더 심해진다. 이것이 현실이다.
비뚤어진 교육 현실은 대학 교육과 입시 제도 개선을 통해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한다면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참 힘들다. 진짜 공부가 필요한 곳이 대학이지만 교수 사회는 정년 보장용 연구ㆍ논문 실적 올리기에 허덕이고, 외부 지원ㆍ후원금 유치에 바쁘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 공부를 시작한다. 취업에 유리한 과목만 기웃거리고 그렇지 않은 과목은 외면한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뽑는다지만 우리 사회와 대학의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12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다. 무턱대고 입학사정관제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방향은 맞지만 우선 점진적 시행을 통해 과학적이고 보편타당한 학생 선발 방법을 확보하는 것이 현재로선 바람직하다. 일천한 경험, 데이터와 전문가 부족 등 현실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처럼, 점수 아닌 학생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 창의력을 보는 입시 제도가 확실히 퍼져나가 뿌리 내리는 상황이 전제된다면, 공교육도 달라질 것이다. 암기식, 주입식, 문제풀이식 공부로 학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존 과목 체계를 뒤흔들어 사교육이 가르칠 수 없는 새로운 과목을 개발하고, 관련 교습법도 만들어 교사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학교 시설이나 교실 구조도 확 뜯어 고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과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지가 시험 성적이나 등수보다 더 중요한 평가의 잣대가 된다면 학교 공부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질 것이다. 그렇게 교육 받은 아이들이라면 대학 교육의 내용과 수준도 바꿀 수 있다. 여기에 밤 12시까지 아이들을 붙잡고 입시 공부를 시키는 사교육이 끼어들 수 있을까.
교육이 입시를 규정하도록 해야
너무 이상적인 소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금지하고, 방과후 학교를 확대해 학원강사를 불러다 국ㆍ영ㆍ수 문제풀이 공부를 한다 해서 공교육이 살아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은 단지 학교로 입시학원을 불러들여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교육비 감소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정작 필요한 공교육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발상은 거둬들이는 게 맞다.
그보다는 입시가 교육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교육이 입시를 규정해 가도록 교육과 입시의 형식과 내용을 혁신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그래야 학교 교육이 산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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