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부터 88년간 유지돼온 좌측 보행 규범이 우측 보행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을 비롯해 에스컬레이터, 공항의 무빙워크, 지하철 개찰구 등 방향도 우측 보행에 맞게 점차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29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한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보행자 통행을 우측으로 바꾸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법에는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도로에서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1921년부터 시행된 좌측 보행은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을 받아온 통행 규범으로, 에스컬레이터나 무빙워크 등 보행시설 배치에도 일부 반영돼왔다. 하지만 좌측 보행이 인체 특성과 맞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의 실제 보행 흐름과도 어긋나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우측보행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회전문도 우측 보행으로 설계돼 있는 등 인체는 오른쪽으로 걷는 것이 편하게 돼 있다"며 "실제 지하철 역의 인파 흐름도 우측이 많지만, 통행 규범이 좌측이다 보니 혼선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좌측 보행은 교통 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높고 보행자간 충돌 가능성도 더 크다. 인도에서 좌측 보행시 옆 차도의 차량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충돌을 피할 여지가 적다.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짐을 든 보행자끼리 부딪치기 쉽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도 최근 오른손잡이가 88.3%인 우리나라 사람은 우측 보행이 더 안전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생체반응 실험에서 우측 보행시 눈동자 움직임이 15%, 심장박동수는 18% 각각 감소하며, 보행자간 충돌은 7~24%, 보행밀도는 19~58% 줄어드는 반면 보행 속도는 1.2~1.7배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우측 보행으로 바꾸면 보행자 교통사고가 20% 가량 줄고 인적 피해비용이 711억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국내 보행자 교통사고는 4만8,312건이 발생해 2,137명이 숨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보행 원칙이 우측으로 바뀜에 따라 각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이 실시하는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도 달라진다.
국토해양부는 좌우 통행이 뒤섞여있는 기존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지하철 개찰구 등의 방향도 우측 보행에 맞게 단계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새로 설치할 경우 우측 보행을 적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또 지하철역, 기차역, 공항, 산책로 등에 우측 보행 안내판을 부착하기로 했다.
■ 3차로 이하 직진신호 때 '비보호 좌회전'
교통신호체계가 2011년까지 교차로의 비보호 좌회전 허용 및 우회전 신호등 도입을 골자로 전면 개편된다. 차량 흐름을 원활히 하고,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 비보호 좌회전 확대
현재 작은 도로에서만 가능한 비보호 좌회전이 편도 3차로 이하 도로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교차로에서 좌회전 하려는 차량은 직진신호에 요령껏 진행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신호 흐름이 남북직진→동서좌회전→동서직진→남북좌회전 4단계에서 남북직진→동서직진으로 단순화하고, 신호 주기도 140~150초에서 60~120초로 짧아진다.
경찰은 비보호 좌회전에 따른 사고 예방을 위해 좌회전 대기구역을 두고 대기차량이 빠져나갈 수 있게 2~5초간 모든 방향에 적색신호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3차선을 초과하는 도로에서는 가능한 좌회전 신호를 없애고 P턴, U턴을 늘릴 계획이다.
◇ 아무 때나 우회전 제한
현재는 언제든지 우회전이 가능해 우회전 한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직진차량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회전 차량 전용 신호등이 도입된다.
우회전 방향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일 경우 이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우회전을 제한하게 된다. 경찰은 이와 함께 교차로 개선사업을 통해 우회전 전용차로 설치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 점멸 신호등 확대
통행량이 줄어드는 야간이나 휴일 대도시 외곽도로와 중소도시 지방도로에서 점멸 신호등 운영이 확대된다. 현재 점멸신호 운용은 심야 16.2%, 전일 12.3%, 휴일 1.1%에 그쳐, 차량이 없는데도 신호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교통량을 고려해 점멸 신호를 늘리고, 신호통제가 굳이 필요없는 교차로는 무신호로 바꿀 방침이다.
새 신호체계는 올해 5개 도시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확대 실시된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새 신호체계는 과학적으로 선진국에서 검증된 것이지만 방어운전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라면서 "운전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시행 전 교육과 홍보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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