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선생님께서 주시는 것을 모두 어머니를 드려서 창남이는 추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알아차렸습니다. 선생님의 눈에도 굵다란 눈물이 흘렀습니다."(방정환의 '만년샤쓰'ㆍ1927)
"건우는 번번이 노란 스티커를 받습니다. 선생님도 밉고 학교에도 가기 싫어집니다. 어느 날, 선생님 책상에 있던 노란 스티커 뭉치를 몽땅 찢어 화장실에 버립니다."(황선미 '나쁜 어린이표'ㆍ1999)
한국 아동문학의 캐릭터들은 어떻게 변모해 왔을까. 아동문학 속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캐릭터 변화를 통해, 거기 투영된 시대의 모습을 반추하는 세미나 '아동문학의 새로운 주인공을 찾아서'가 계간 창비어린이 주최로 30일 서강대에서 열린다.
발표자들은 아동문학 작품에 그려진 인물의 면면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강박을 읽어낸다. 그리고 '억압된 어린이관'의 진화 가능성을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아동문학 캐릭터 속에서 탐색한다.
■ '근대성'의 시선에 갇힌 어린이
원종찬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한국 아동문학에 묘사된 어린이를 "근대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원 교수는 '아동문학의 주인공과 아동관에 대하여'라는 발표문을 통해 어린이 캐릭터를 "어린이의 본성이라기보다 현실에 무게중심을 둔 어른의 요구, 곧 한국적 근대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근대의 시선'이란 아기를 업은 <몽실언니> (권정생ㆍ1984)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가족과 국가 그리고 이념에 헌신하는 어린이상이다. 몽실언니>
피노키오, 톰 소여, 말광량이 삐삐 등 일탈의 주인공이 활약하는 세계 아동문학의 근대와는 정반대다. 원 교수는 이런 차이의 근원을 "봉건적인 질곡에 숨통을 조인 근대 역사"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근대성의 강박이 한국 아동문학에서 생명력을 빼앗았다고 지적한다. "교훈주의 동화의 주인공은 자기 생명력에서 나온 '행동'보다는 상황에 기대어 '반응'하는 인물이다. 남는 건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착한 어린이표' 주인공들이다."
원 교수는 시민사회가 자리잡은 1990년대 이후에도 아동문학이 근대'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곡절 많았던 '인고의 현실' 자리를 고만고만한 '평균치의 일상'이 점유"하게 됐지만, 상식을 뒤집는 통쾌한 상상력과 인물의 개성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판타지로 넘어가는 <영모가 사라졌다> (공지희ㆍ1999) 등 달라진 면모의 작품들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마침내 회개하고 화해하는" 결말의 상투성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그가 지적하는 한계다. 영모가>
그런 "어린아이다움의 소멸"을 보이는 아동문학의 탈출구로 원 교수는 "어린이의 본능적 욕망을 긍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까맣게 잊어먹고 하루 종일 놀다 돌아오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윤석중의 동시 '넉 점 반'(1940)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어린이는 길 아닌 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생명의 힘이 결국 결정론적 사고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결론이다.
■ '모범'의 화석을 깨는 어른들
아동문학평론가 김현숙씨의 발표문 '어른 등장인물 어디까지 왔는가'는 아동문학 속에서 점점 의뭉스러워지는 어른들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는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할머니' '날티 나는 할아버지'에 독자들이 박수를 치는 현상에 주목한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김려령ㆍ2007)의 할머니는 입양된 손녀에게 "그런 말 듣기 싫으면 나가라"고 서슴없이 얘기하고,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최나미ㆍ2005) 속 엄마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 엄마의> 내>
김씨는 이런 인물들에 대한 호응을 "우리가 '플롯'에 종속된 인물의 해방을 학수고대했음을 뜻한다"고 분석한다. 작의(作意)에 압도당한 인물들로 인해 그 동안 아동문학의 서사가 생기를 잃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아동문학 속의 인물들도 현실의 인물에 가까워져 실재감을 획득하면서, 이런저런 행동을 요구하는 플롯의 요구에 맞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아동문학 캐릭터의 문제가 개성적 인물의 창조에만 있지는 않다"며 "달라진 어른 캐릭터가 작품 안팎의 어린이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는 더 고찰해야 할 과제"라고 결론짓는다.
유상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