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재발을 막아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한국은행법 개정 논의가 결국 해당 상임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보류되고 말았다. 가을 정기국회에서 다시 논의하자고는 했지만, 그때가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은 주변에선 이미 "한은법 개정은 이제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한은법 개정안 의결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앞서 개정안을 의결한 기재위 내 경제재정소위 의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 의원들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의 줄기찬 반대 때문이었다.
이유도 다양했다. 재경원 출신의 한나라당 배영식 의원은 "지금 있는 제도로도 가능한데 굳이 법을 고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같은 당 진수희 의원은 "정무위가 반대하는데 재정위에서 통과시켜봤자 법사위 통과가 불확실하다"며 보류를 주장했다. 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금융위기 와중에 재정부, 한은, 금감원 간의 갈등을 국회가 증폭시키느니 시간을 주자"고 했다.
이번 논의를 주도해 온 서병수(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은 "장기간 공들여 준비해 온 법안이니 시행시기를 내년 1월부터로 미뤄 일단 통과시키고 올해 안에 정부 안을 추가로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역시 반대에 부딪쳤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18대 국회 들어 재정위가 소위 8번, 전체회의 4번에 걸쳐 논의한 법안은 한은법이 유일하다"며 "이 정도 노력에도 의결조차 어려운 현실이 실망스럽다"고 개탄했다.
결국 한은법 개정안 처리는 "시간을 주시면 정부안을 마련해 제출하겠다"는 윤증현 재정부 장관의 일관된 입장에 다수 의원들이 지원 사격을 하면서 9월 정기국회로 미뤄졌다. 윤 장관은 "9월 국회 전까지 관련 자료와 정부법안을 내달라"는 서 위원장의 요구에 줄곧 "노력해 보겠다"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다 결국 "초안이라도 내 보겠다"고 물러서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현재로선 9월 정기국회가 되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없을 것이란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은에 감독권을 주지 않으려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는 계속 반대할 것이고, 기획재정부 역시 한은과 금융위 사이에서 결국은 '손이 안으로 굽을 수(금융위 지지) 밖에'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회 역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한은법을 고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한은법 개정은 '장기추진과제'정도로 분류되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될 공산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한은법 개정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던 정부와 별도로, 이번에는 의원들이 논의를 주도해 그나마 여기까지 왔으나 역시 힘이 부치는 모습"이라며 "9월까지 마련될 정부안에 과연 의미있는 변화가 담길 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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