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여파로 가계, 기업의 빚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가계 빚은 사상 최대로 늘었지만 상환능력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도 크게 악화됐다.
눈덩이 빚 부담에 벼랑끝 가계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가계 부문의 금융부채는 802조원으로 1년 전(743조원)보다 7.9%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5.8% 증가한 개인의 가처분소득(세금ㆍ이자상환액 등을 제외한 소비 가능한 소득)보다 빚이 더 많이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채무 상환능력을 의미하는 개인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배율은 지난해 1.4배를 기록하며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2년 이후 가장 높아졌다. 연간 가처분소득이 1,000만원이라면 금융부채는 1,400만원이라는 뜻. 이 배율은 2004년 1.13배에서 2005년 1.20배, 2006년 1.29배, 2007년 1.36배로 계속 증가 추세다. 김용선 한은 안정분석팀 차장은 "통계 작성 이전인 1990년대까지 추정해봐도 지난해 가계의 채무 상환능력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최근 대출금리 하락으로 올해 가계의 원리금상환부담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고용사정이 악화일로여서 장기적인 가계의 채무 상환능력은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더 위험
경기침체로 기업의 사정도 크게 악화됐다. 1,600여 상장기업(금융기관 제외)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9%로 전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1,000원 어치를 팔아 59원의 이익을 올렸다는 뜻.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도 전년의 6.0%에서 3.5%포인트 급감한 2.5%를 기록했다.
외부충격에 견딜 능력을 나타내는 자기자본비율과 부채비율 등 재무건전성지표도 악화됐다. 지난해 대기업의 부채비율(102.5%)은 인수합병(M&A) 관련 차입과 회사채 발행이 늘어나면서 2003년(102.4%) 이후 처음으로 100%를 넘었다.
갖고 있는 현금으로 단기차입금과 이자비용을 부담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현금흐름 보상 비율도 대기업의 경우 전년의 223.2%에서 지난해 96.3%로 급락했다. 재고가 쌓이고 외상 거래(매출채권)가 늘어나면서 현금이 제대로 돌지 않은 탓이다.
한은 관계자는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불경기가 길어지면 빚부담 능력이 약한 기업들의 도산이 늘어날 수 있다"며 "개인은 대개 돈 있는 사람이 빚도 많은 경향이 있어 최악의 경우 자산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을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해 빚을 쌓아가는 기업들은 훨씬 위험성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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