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김모(50ㆍ건설업)씨는 지난 2월 친목모임을 통해 알게 된 A씨로부터 이라크 화폐 100만 디나르를 구입했다. "조만간 수 백억원이 될 것"이라는 A씨의 말에 솔깃해 1디나르에 50원씩 총 5,000만원의 거금을 들였다.
김씨는 서울 종로의 외환은행 본점을 찾아 진짜 이라크 화폐라는 확인도 받았다. 김씨의 친구 5명도 A씨에게서 최소 300만원에서 수천만원 어치의 이라크 화폐를 샀다고 한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1디나르 당 100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아는데, 벌써 두 배 번 것 아니냐"며 흐뭇해 했다.
국제적으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이라크 화폐에 투자를 유도하는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만간 이라크 정세가 바뀌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현혹하지만 이라크 화폐가 자국에서도 화폐가치를 상실, 사실상 휴지조각에 가까워 주의가 요구된다.
주로 50~60대 중장년 층을 타깃으로 삼아 이들의 노후 자금을 노리는 판매상이 국내서만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라크 화폐를 구입해와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주 2~3회에 이르며 문의 전화도 많다"고 말했다.
이라크 화폐 판매상들이 퍼뜨리는 감언이설은 "이라크에서 8월께 미군이 철수하고 재건 사업이 본격화하면 화폐가치가 크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2003년 화폐개혁으로 화폐가치가 안정됐고, 세계 3위의 석유매장량을 무기로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 화폐가치가 지금보다 최소 100배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어 디나르 환율은 명목상 1달러 대 1.6디나르. 원화로 따지면 1디나르에 842원 가량이다. 판매상들은 이 점을 노려 1디나르 당 50~100원으로 판매하면서 "국제시세보다 훨씬 싸다"는 말로 현혹한다.
하지만 이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기승을 부린 이라크 화폐 사기 판매의 재판 격이다. 이라크 전쟁 후 미 군정이 2003년 화폐 안정을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하긴 했지만 새 화폐 역시 지속된 인플레이션으로 사실상 종이조각으로 전락, 국제 거래에서 배제된 지 오래다.
박억선 외환은행 금융지원영업부 차장은 "이라크 현지에서도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수만 디나르를 자루에 담가야 할 정도다"며 "이라크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또 다시 화폐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수익을 보장하는 판매는 100% 사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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