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발생 100일을 이틀 앞둔 27일.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진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1층에서 유족들은 여전히 철거민 5명의 영정이 놓인 합동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의 장례는 참사 100일이 다 되도록 기약이 없다.
유족과 철거민들은 22일부터 아예 분향소 앞에 플라스틱 패널과 비닐로 농성장까지 만들었다. 이날 오전 사고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용산 범대위)는 "정부는 사과하지도 않고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보상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사과, 재개발 관련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용산 참사 후 100일 가까이 지났지만,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참사의 원인이었던 재개발 지역의 이주 보상비 문제에다, 희생자 장례 및 피해 보상까지 겹쳐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용산구청에 따르면 27일 현재 참사가 발생한 용산4구역 재개발 지역에 남아있는 세입자는 모두 83명. 참사 당시 세입자 123명 중 그나마 40여명이 이주보상금을 받고 떠났지만, 남은 세입자들은 이주 보상금을 올리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희생된 5명의 유족들은 장례비용과 보상금 문제가 더욱 시급하다.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순천향대병원의 하루 이용료만 220여만원으로, 지금까지 병원비가 2억6,000만원 정도 밀려있다.
현행법상 이들이 불법 행위로 숨졌기 때문에 이들이 보상을 받을 길은 따로 없다. 범대위 관계자는 "추모콘서트 등을 통해 2억원 가량을 모았으며 최대한 성금으로 병원비를 마련할 예정"이라면서도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 보상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벼랑 끝까지 버티겠다는 철거민이나 유족측에 맞서 재개발 사업을 시행하는 조합측도 양보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측은 최근에는 유족을 포함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소속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는 이유로 8억7,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조합 관계자는 "우리도 이번 사태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조합측은 지난달 11일부터 일부 세입자가 떠난 건물에 대한 철거를 재개해 철거 용역직원들과 남아있는 세입자들 간에 시비가 붙는 일도 부쩍 늘고 있다.
용산구청은 "조합과 세입자간의 문제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현재 정부와 대화 창구가 없어 보상비 문제 등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용산구청과 경찰의 중재로 조합측이 유족에 위로금을 주는 형태로 유족과의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범대위측은 강경하다.
범대위 관계자는 "지난달 조합측이 위로금을 줄 테니까 나가달라는 제안이 있긴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며 "정부의 사과와 범정부 차원의 피해보상책이 나오지 않으면 협상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범대위측이 이번 사안을 재개발 정책 전반과 연계해 투쟁하고 있어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용산참사 관련 추모 집회가 이어지면서 불법 시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철거민도 늘어나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범대위 관계자는 "참사 당시 불법 시위로 경찰에 구속된 7명 외에도 참사 이후에만 철거민을 포함해 17명이 사법처리됐다"고 말했다.
범대위는 이날부터 일주일간을 '범국민 희생자 추모주간'으로 지정해, 29일 100일 추모제, 다음달 2일 촛불 1주년 집회 등으로 용산 참사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계획이다. 문제 해결의 실타래가 더욱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상황이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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