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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게이트/ 퇴임 대통령 소환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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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게이트/ 퇴임 대통령 소환의 정치학

입력
2009.04.2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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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통치자였던 전직 대통령을 검찰청사 앞에 세워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게 하는 일은 사법절차 이전에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다. 지난 정권의 과거와 새 정권의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펼쳐지는 정치세력 간 쟁투의 성격을 띌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은 1995년 11월1일 처음 있었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보름 뒤 구속됐다. 한달 여 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내란죄로 구속됐다.

전ㆍ노 구속은 당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축으로 하는 집권세력이 구사한 국면전환용 승부수였다. 95년 여권은 수렁 속에서 동아줄을 찾고 있었다. 6ㆍ27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민심은 흉흉했다.

이런 혼돈을 전ㆍ노 구속으로 정면 돌파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승부수를 떠받친 것은 여론이었다. 95년 11월 실시된 한국일보 여론조사(미디어리서치)를 보면 당시 국민의 69.4%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힘을 받은 집권세력은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는 마침표"라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전ㆍ노 구속 이후 정치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구 집권세력은 와해됐고 다음해 4월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여당은 압승했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동아줄이었다.

17년 전 프레임을 사흘 뒤 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장면에 적용해보자.

MB정부는 집권 1년차를 촛불 수렁에서 보내야 했다. 이어 초유의 경제위기가 엄습했다. 그리고 2년차를 맞았다. 국정을 주도하기 위한 '동아줄'이 필요했다. 물론 여권은 검찰 수사를 시나리오로 보는 시각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또 의도가 개입됐든 아니든 이번 사안이 '동아줄'이 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우선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밝혀진 뇌물 액수가 전ㆍ노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본인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검찰 조사에서 얼마나 더 팩트가 나오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치개혁을 주창했던 노 전 대통령측이 검은 돈을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은 크지만 정치권력의 수뢰가 반복되면서 그 충격이 반감된 측면도 있다.

그래서인지 여권의 대응은 무척 조심스럽다. 한 고위관계자는 "정무적으로만 보자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에 거창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문민정부 시절 집권세력에 몸 담았던 한 인사는 "95년 어법으로 하자면 노무현의 소환은 '낡은 좌파세력의 청산'인데 여권 핵심부가 이런 용어를 되도록 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되려 역풍(逆風)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민적 공감대와 명분이 상당했던 전ㆍ노 구속 이후에도 대구 경북(TK)에서의 반발이란 역풍이 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걱정이다. 여권 주변에선 "가만히 두면 노 전 대통령 세력은 자연히 죽을 텐데 괜히 건드려서 살려주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권이 도덕성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천신일 세중나모 여행사 회장을 고리로 한 박연차 연루 의혹이 여권 핵심으로까지 가지를 뻗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서울의 한나라당 재선의원은 "지역의 우리측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얼마 안 되는 돈 가지고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17년 전과는 다른 전직 대통령의 소환이 될 것 같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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