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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거기쯤에서 봄이 자글자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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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거기쯤에서 봄이 자글자글 끓는다

입력
2009.04.2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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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소음 보태지 않은

울음소리 웃음소리 그 흔한 날개짓 소리조차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뿔도 침도 한 칸 집도 모래 무덤조차도

배추흰나비 초록 애벌레

배추잎 먹고 배추흰나비 되었다가

자기를 먹인 몸의 내음

기억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나뭇잎 쪽배처럼 허공을 저어 돌아온

배추흰나비 늙어 고부라진 노랑 배추꽃 찾아와

한 식경 넘도록 배추 밭 고랑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지니고 살지 않아도

무거운 벼랑이 몸속 어딘가 있는 모양이다

배추흰나비 닻을 내린

늙은 배추 고부라진 꽃대궁이 자글자글 끓는다

● 김선우 시인의 아름다운 시들은 우리에게 삶이라는 게 저렇게 고요히 '자글자글 끓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자신의 근원에 돌아와서야,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으면서도 '무거운 벼랑'을 내려놓은 가벼운 배추흰나비. 돌아온 흰나비를 보고서야 마침내 삶의 절정인 죽음으로 들어가는 늙은 배추.

봄이라는 계절은 살아감의 탄생과 멸(滅), 그 두 극단에 교차하는 환희와 비애를 동시에 보여준다. 어쩌면 '늙은 배추 고부라진 꽃대궁'이 자글자글 끓어야만 녹음의 계절을 우리는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녹음이 지쳐서 단풍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 순간까지 배추흰나비의 고요함을 바라보는 인간은 멸 속에 쪼그려 앉아 저만치 저만치, 오고 있는 다른 계절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자글자글 끓지 않고 지나가는 계절은 없다. 가벼운 흰나비의 어미인 늙은 배추의 꽃대궁마저 적멸에 드는 이 소란하고도 아득한 봄의 절정.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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