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 통과한 편지 50통 가량만 읽었는데도 눈이 아파요. 그래도 육필 편지를 읽으니 감회가 새롭고 편지 보낸 사람의 사연이 마음에 더 와 닿네요."(양희은) "옛날 자신이 받은 편지까지 동봉해 보내는 분도 있어 읽는 재미가 있지만 간혹 악필로 쓴 편지를 만나면 아주 죽어요."(강석우)
MBC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가 작은 역사를 만들었다. 1979년 첫 선을 보였던 '신춘 편지쇼' 행사가 올해로 서른 돌을 맞았다.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이 운영하는 단일 행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다. MC인 양희은과 강석우는 "'여성시대' 청취자들의 편지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시대'는 '신춘 편지쇼' 서른 돌을 맞아 예년과 달리 인터넷 접수를 받지 않았다.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되살려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육필 편지로 국한시켰음에도 지난해(2,500건) 못지않은 약 2,000통이 접수됐다. "편지를 직접 쓰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갔겠어요. 정말 대단한 정성들이죠."(양희은)
올해의 주제는 '편지'. 가족에 대한 사연들이 많았고, 남성 참가자들의 증가가 눈에 띈다. 양희은은 "남성이 대략 10%는 넘는 것 같다. 참 대단한 수치"라고 경탄했다. 그러면서도 "(노는) 남성들에게서도 편지 채택을 통해 생활에 보탬을 얻으려는 의도가 보여 경제 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평소 방송도 그렇지만 이번 '편지쇼' 접수자 중에서도 상금(최우수상 300만원, 우수상 200만원)을 노린 '선수'가 꽤 많았다.
그러나 허구적인 내용으로 감동을 자아내려는 글들은 작가와 심사위원단 그리고 MC들에 의해 거의 걸러지게 마련. "상금을 타내려는 야심은 꼭 읽혀요. '너무 짰다'는 느낌이 팍 오거든요.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라도 진솔한 사연은 가슴에 직격탄을 쏩니다."(양희은) "편지에는 그 사람 성품이 묻어나요. 아무리 아름답고 잘 쓴 글이라도 거짓 글은 우리를 못 속여요."(강석우)
'여성시대'는 29일 오후 애청자들을 초청해 서울 여의도동 MBC 공개홀에서 '신춘 편지쇼' 당선작 발표 축하행사를 연다. 강석우가 색소폰으로 백지영의 히트곡 '사랑 안 해'를 연주하고, 양희은은 '잘 가라, 내 사랑'을 부른다. 강석우는 "옛날 놀던 가락을 뽐낼 기회"라며 미소 지었고, 양희은은 "우리는 (애청자들을 위한) 레퍼토리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프로그램 장수의 힘은 탁월한 진행이 아니라 애청자들의 사연 하나하나"라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매일 오전 9시면 어김없이 마이크 앞에 앉는 두 진행자의 성실함을 장수의 비결에서 과연 뺄 수 있을까.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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