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재미있는 영화 속으로 도피하길 원한다. 가장 싼 값에 즐길 수 있는 가치 있는 오락이 바로 영화다."(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
할리우드가 장밋빛 꿈에 들떠 있다. 세계를 잿빛으로 덮은 경제위기에 오히려 고무된 듯하다.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기관 닐슨 EDI에 따르면 올해 첫 10주 동안의 관객 수는 지난해보다 8% 늘었다. 불황이 가져다준 역설적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5월 1일 블록버스터 시즌 개막을 앞두고 돈벌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올 여름 시장을 노리는 작품 대부분은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과 '스타트랙: 더 비기닝', '박물관이 살아있다2',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등이 줄줄이 극장을 찾는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인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업'도 구름 관객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진정한 비밀무기는 '국가적인 경제 불행'이라는 말이 미국 영화계에서 나오고 있다.
1920년대 독일 영화의 번성도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잿더미가 된 경제를 발판 삼았다. 하루하루 치솟는 물가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독일인들이 극장에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국은 어떨까.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관객은 지난해 보다 0.1% 줄었다. '과속 스캔들'과 '쌍화점' 등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들의 성적을 제외하면 21.2%가량 관객 수가 오그라들었다. 영화 개봉 편수가 지난해보다 40.1%나 감소한 여파가 크다. 지갑을 열고 싶어도 볼 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박쥐', '마더', '국가대표', '해운대' 등 기대작들이 개봉 대기 중이라 충무로는 은근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 그러나 냉소적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고, 영화에는 유난히 짜게 구는 관객들이 있는 한 '불황=호황' 등식은 별나라 이야기라는 것.
"별다방, 콩다방서 하루 몇 잔씩 커피를 사 마시면서 7,000원짜리 영화에 대한 대우는 너무 가혹하다. 콘텐츠가 이리 대접 받아서 문화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겠나."(A영화사 대표) 무시해서는 안 될 쓴 소리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