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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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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박쥐'

입력
2009.04.2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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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2005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미국의 로버트 알드리치(1918~1983) 감독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출 방식을 거침 없이 밀고 나갔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본이라는 속박과 대중이라는 상투성에서 자유롭고 싶은 박 감독의 욕망이 엿보였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인 '박쥐'는 박 감독의, 박 감독에 의한, 박 감독을 위한 작품이다. 주변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영화세계를 향해 직선주로를 내달리고 싶었던 박 감독의 야심과 이를 꿋꿋이 밀고 나간 뚝심이 실체를 드러낸다.

요컨대 '박쥐'는 대중들의 보편적인 기호보다 박 감독의 취향에 더 충실한 영화다. 박 감독의 작품이 거의 늘 그랬듯 개봉 후 지지와 비판의 강렬한 대립이 예상된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리더필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폭죽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림 대신 쓸쓸한 피리소리가 고막을 적신다. 도입부부터 파국을 예고하고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리지만 영화는 블랙코미디와 공포와 멜로 등을 오가며 웃기면서 서글프고 소름끼치는 기기묘묘한 '박찬욱 월드'를 펼쳐낸다.

이야기는 파격적이면서도 역설적이며 다양한 정서를 품어낸다. 신부 상현(송강호)은 극비리에 진행되던 외국의 백신실험에 참여했다가 잘못된 수혈로 흡혈귀가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친구 강호(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되고, 치미는 욕정에 몸을 떤다.

영화는 인간의 원죄와 구원에 대해 그리고 사랑의 정체성과 영원성에 대해 끝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건물과 건물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목뼈가 부러져도 죽지 않는 신적인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인간의 비극적 원형질에선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둘의 최후가 처연하다. '올드보이'처럼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한다.

불편하고 불친절해 보이지만 영화적 재미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상현이 피를 탐하면서도 살인은 극도로 피하는 모습 등이 흡혈귀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뒤집는다. 박 감독의 악동 기질은 예상치 못한 상황서 기습적으로 터지는 얼음장 유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박 감독의 장기 중 하나인, 국내 일급 스태프들이 빚어낸 이미지의 향연도 대단한 볼거리다. 하얀 바닥에 흩뿌려진 선홍색 피, 피리를 채우고 넘치는 각혈의 선득함 등이 아찔하면서 매혹적이다. 특히 흡혈귀로 변한 태주와 상현이 적의를 내뿜으며 서로의 피를 탐닉하는 모습은 사랑과 증오에 대한 본질적인 모순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 을 바탕으로 했다. 영어제목은 'Thirst'(갈증). 살아있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목이 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30일 개봉, 18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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