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1시 울산 남구 고래박물관이 마주보이는 장생포항. 1986년 포경(捕鯨)이 전면 금지되기 전까지 국내 최대 고래잡이 전진 기지였던 이 항구의 역사를 바꾸는 행사가 열렸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자연 상태로 뛰노는 고래를 관찰하며 즐기는 관경선(觀鯨船) 취항식이다. 본격적인 '고래관광' 시대가 열린 것이다.
행사를 주관한 울산 남구와 해상 안전을 책임지는 해양청 해경 등은 전날부터 마음을 졸였다. 먼바다에 파도가 높게 일고 이날 아침까지 비가 내려 과연 배를 띄울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오후 3시부터는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발령될 것이란 예보도 뜬 상태였다.
몇 차례 시범운항을 거쳐 이날 처음 일반에 공개된 '고래바다 여행선'(선장 이용우)은 오전 11시30분과 오후 1시30분 두 차례 운항 예정이었다. 이 배는 1993년 진수해 국립수산과학원 시험조사선으로 쓰이다 지난해 울산 남구가 기증 받아 관경선으로 새 단장했다. 총톤수 262톤에 길이 39.48m, 폭 8m, 속력은 최대 12노트로 한번에 150명이 탈 수 있다.
오전 11시10분께 드디어 울산항 항만관제소로부터 관경선 조타실로 출항 사인이 떨어졌다. 취항식에 참가한 내빈과 시민 등 139명이 오르자 배는 미끄러지듯 부두를 빠져나갔다.
배는 시원스레 속력을 냈지만, 항해사 최영만(40)씨의 낯빛은 편치 않아 보였다. 파도가 높아 예정보다 빨리 배를 돌려야 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백파(흰 파도)가 일면 고래 출몰을 기대하기 어렵고 육안으로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생포항을 빠져 나온 관경선은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E1, E2 해상 정박지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파도가 높아졌다. 포말이 바람에 날려 갑판 위로 튀어 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본 갑판장 박길문(57)씨는 "아이고 갈매기 하나 없는 이런 날엔 고래 못 봅니더. (고래가) 먼바다서 들어오질 않는 기라"라며 투덜거렸다.
청어, 꽁치 등을 먹는 돌고래류의 출몰은 '미끼 물고기' 격인 멸치 등 작은 고기를 먹는 갈매기의 움직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다. 파도가 높으면 작은 고기들이 물밑 깊숙이 내려가 갈매기가 날지 않고, 돌고래류도 먹이가 없어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출항한 지 45분쯤 지나 배가 정박지 E3 지점에 도달하자 파도가 더 높아졌다. 지난 13일 1차 시범운항 때 고래 1,000여 마리가 발견된 울기등대 동쪽 5㎞ 해상이 눈앞에 보였다.
갑자기 뱃머리가 큰 원을 그리며 육지로 향했다. 파도가 점점 높아지자 선장이 귀항을 결정한 것이다. 고래떼를 보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승객들의 입에선 탄식이 터졌다.
부두로 귀항한 관경선을 새 손님들이 반갑게 맞았다. 김남조, 천양희, 정일근 등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 120여명이 이날 고래박물관 광장에서 울산 남구가 제정한 '제1회 고래의 날'을 기념한 문학제를 연 뒤 이 배에서 선상 고래시낭송회를 가질 참이었다.
시인들이 배에 올랐지만 배는 꿈쩍하지 않았다. 출항금지 사인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선상 시낭송회는 배가 부두에 접안된 상태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천양희 시인이 먼저 운을 뗐다. "오늘 고래를 못 봤지만 나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고래가 있습니다. 다음에 또 이 장생포에 와서도 고래를 만나지 못하면 또 기다리겠습니다."그에겐 고래가 설렘인 듯 했다. 김남조 시인은 "고래는 항상 바다 속에 있다.
우리는 오늘 고래를 보고 느끼고 간다"면서 "사람들에게 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 시인"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시인 중 109명은 '고래의 날'을 기념한 헌시로 '울산바다 고래 봐라'라는 제목의 시화집을 펴냈다.
이날 취항한 '고래바다 여행선'은 2일부터 토ㆍ일요일 한차례씩 주 2회 운항한다. 5월 중순까지는 고래떼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점과 시간대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 운항이어서 출항 시간이 그때 그때 달라질 수 있다. 승선료는 울산시민 1만5,000원, 외지인은 2만원이다. 남구청에서 전화 예약(052-226-5410~15)을 받고 있으며, 5월 중순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되면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사실 시험조사선 운항 결과를 보면, 울산 앞바다에서 고래를 만날 확률은 30% 가량에 그친다. 이에 따라 남구는 고래 발견 확률을 높이기 위해 출항에 앞서 경비행기를 미리 띄워 고래떼가 발견된 쪽으로 탐사선을 유도하는 '찾아가는 고래관광'을 시도할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울산고래축제추진위(위원장 김진규)는 다음달 14~17일 '제15회 고래축제' 기간 부산에서 640톤급 크루즈선(정원 400명)을 빌려와 고래탐사선으로 운항할 예정인데, 11차례 운항 4,400석이 이미 매진됐다.
김두겸 남구청장은 "전국 유일의 고래특맙〈?고래관광 실현으로 고래가 명실상부한 울산만의 자산이 됐다"면서 "울산 앞바다에 1만여 마리의 고래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된 만큼 이들이 다니는 길목을 찾는 노하우를 축적, 고래관광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말했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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