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침내 검찰에 소환된다. 30일 오후 서울 대검 청사에 출두해 박연차 게이트에 얽힌 포괄적 뇌물죄 혐의에 관해 직접 조사를 받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당초 예상보다 쉽사리 소환에 응한 것은 다행이지만, 또다시 전직 대통령이 비리 혐의로 검찰에 불려 나오는 국가적 수치를 함께 겪어야 하는 국민의 마음은 새삼 착잡하다. 본인과 검찰, 그리고 언론 등도 이런 국민의 심정을 깊이 헤아렸으면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소환에 응한 것을 특유의 '정면 돌파'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박씨가 정상문 전 비서관에게 건넨 100만 달러와 조카사위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는 군색하나마 부인과 아들을 내세워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이자 청와대 집사였던 정씨가 대통령 자신을 위해 공금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까지 드러난 마당에는 달리 버틸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그가 옹색한 처지보다 국민에 대한 책임을 뒤늦게나마 올바로 인식한 것으로 보고 싶다. 따라서 검찰에서도 마냥 사실관계와 위법 여부를 다투며 자기변호에 몰두하기보다 진실을 솔직히 밝혀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성의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그게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난' 처지에서 그나마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길이다.
특히 자신이 모든 '특권'에 맞서는 투사 노릇을 자임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권을 이용한 비리에 얼마나 깊이 연루됐는지는 결국 법원이 가리겠지만, 행여 전직 대통령의 특권적 지위에 기대서는 안 된다. '생계형 범죄' 운운하는 황당한 추종자들과는 다른 분별력을 보이기 바란다.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또다시 전직 대통령을 수갑 채워 법정에 세우는 참담한 상황만은 피하는 배려를 베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언론을 비롯한 사회는 무엇보다 요란스레 소동을 부추기는 것을 삼가면서 차분하게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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