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 박병대 수석부장판사)는 24일 ㈜에이원어패럴, ㈜케이유티, ㈜라인테크가 신한ㆍ씨티ㆍ하나ㆍ외환은행을 상대로 낸 키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3건에 대해 일부 인용 결정했다. 그러나 ㈜포스코강판 등 7개 회사가 제일은행과 씨티은행 등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 7건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고위험의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에게는 높은 수준의 보호의무가 요구된다"고 일부 인용 이유를 밝혔다. 환차손 헤지(회피) 목적에 맞는 상품만 판매하고 상품 구조와 잠재 위험요소를 충실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일부 은행은 설명 의무를 게을리했음은 물론, 환율 하락 기대를 부추기는 방법으로 계약을 유도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은행이 고객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므로 은행이 키코 계약에 따라 옵션 채무를 이행하라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또 여러 상황을 종합해 환율이 계약 당시보다 130%가 넘은 때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은행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환율이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급격하게 변동하는 등 '사정변경'을 이유로 키코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약 체결 당시 미래 환율변동 방향과 위험 발생 가능성 등 제반 요소를 종합한 옵션 계약이 합리적 수준을 벗어날 만큼 불균형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 계약에 무효 또는 취소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월 모나미 등이 신청한 가처분 사건에서 법원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 효력을 정지시킨 결정과는 다른 취지다.
재판부는 기업이 환투기 목적으로 키코 계약을 체결했거나, 가입 기간이 거의 끝나 시급한 결정을 요하지 않는 경우엔 은행의 보호의무 위반 여부에 상관없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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