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많은 기업들이 불황의 늪에서 허덕일 때 게임기 하나로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닌텐도다.
닌텐도는 지난해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와 가정용 게임기 '위'를 앞세워 1조8,200억엔의 매출과 5,3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불황에 영업이익률이 30%를 넘어섰다. 지난달 전세계 누적판매량 1억대와 3,000만대를 각각 돌파한 '닌텐도 DS'와 '위' 덕분이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도 닌텐도 게임기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없느냐"며 안타까워했고, 이윤우 부회장, 최지성 사장, 이재용 전무 등 삼성전자 경영진들은 최근 닌텐도를 배우기 위해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과연 무엇이 닌텐도를 불황에 강한 기업으로 만들었을까.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닌텐도는 선택과 집중에 강하다. 이 회사의 역사를 보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위기가 찾아오면 차별화로 획기적 변신을 시도했다.
1889년 설립된 닌텐도는 120년 동안 오로지 '놀이문화'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지금은 게임기가 유명하지만 초창기 닌텐도의 히트 상품은 화투였다. 닌텐도가 만든 '대통령'이라는 화투는 다른 제품과 달랐다. 화투를 바닥에 내려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화투의 앞, 뒷면 사이에 석회 가루를 넣었다. 요란하게 화투를 치다보면 석회가루가 터져서 화투를 다시 사야했다. 닌텐도는 손쉽게 화투를 사도록 처음으로 담배가게에서 화투를 팔았다.
화투가 성공하자 닌텐도는 1960년대 서양 카드(트럼프)에 도전했다. 카드도 특이했다. 종이 카드 시절, 닌텐도는 비닐 코팅으로 플라스틱처럼 빳빳한 카드를 만들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카드 뒷면에는 미국 월트디즈니와 제휴해 미키 마우스 등 디즈니의 유명 캐릭터를 그려 넣었다.
화투와 카드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1970년대 완구 사업으로 이어졌다. 야구공을 칠 수 있도록 던져주는 야구공 피칭 머신, 장난감용 레이저 광선총 등이 당시 히트 상품이었다. 특히 닌텐도는 기발하게도 오일 쇼크로 문닫은 볼링장들을 인수해 광선총용 실내 사격장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닌텐도는 휴대용 전자계산기에서 힌트를 얻어 1980년에 세계 최초로 휴대용 전자 게임기 '게임&워치'를 내놓았고, 83년 TV에 연결해 즐길 수 있는 가족용 게임기 '패미콤'을 개발했다. 패미콤은 출시 두 달 만에 전세계에 걸쳐 50만대 이상 팔렸고, 당시 내놓은 '슈퍼 마리오'는 지금까지 기종을 바꿔가며 인기를 끄는 최고의 게임 캐릭터가 됐다.
이것이 놀이문화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계기가 됐다. 이후 닌텐도는 1990년 '슈퍼패미콤', '닌텐도64', '게임큐브' 등 일련의 게임기를 속속 내놓으며 게임계의 왕자로 자리잡았다.
▦위기는 변화로 뚫어라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닌텐도는 2000년 이후 일본 소니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호되게 일격을 당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2', MS의 '엑스박스' 등 화려한 그래픽을 앞세운 가정용 게임기에 밀려 닌텐도의 게임큐브는 업계 3위로 밀려났다.
이때부터 닌텐도는 절치부심했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놀이문화에 집중하되, 경쟁사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모두 쉽게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
2005년에 나온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는 손으로 화면을 가볍게 건드리거나 음성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2006년에 나온 위는 화려한 그래픽을 포기한 대신 이용자가 마치 게임속 주인공처럼 직접 몸을 써서 동작을 해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게임을 위해 복잡한 설명서를 읽고 혼자서 가만히 앉아 손가락으로 버튼만 조작하는 경쟁업체들 제품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또 폭력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두뇌 개발, 스포츠 등 건전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닌텐도는 '쉽게 즐기자'는 원칙을 마케팅에도 철저히 적용했다. '위'의 경우 처음 게임기를 구입할 때 집에 가서 당장 해볼 수 있도록 '위 스포츠'라는 게임을 함께 제공한다. 다른 업체 제품들은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웨어를 따로 판매했다.
여기에 모든 게임 소프트웨어를 게임기 판매지역의 언어로 제공한다. 그래서 한국에는 위가 철저한 한글화 작업 때문에 일본보다 1년이나 늦은 2007년에 나왔다.
그만큼 사람들은 손쉽고 색다른 닌텐도 게임기에 열광했다. 특히 게임과 거리가 멀었던 여성과 중장년층까지 흡수하며 세계 놀이문화를 바꾸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닌텐도 위로 볼링 게임을 즐기고,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위 핏'이라는 닌텐도 요가 게임으로 출산 후 몸매를 다듬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일부 학교에서는 닌텐도 DS로 두뇌 개발 교육을 하고 있다.
더불어 닌텐도는 다시 세계 게임계의 왕자로 우뚝 섰다. 닌텐도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 보스턴컨설팅 선정 세계 혁신 기업 5위?올랐고, 위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게임기 시장의 55%를 차지했다. 닌텐도 DS는 미국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72%를 장악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업계에서는 그만큼 닌텐도의 독주가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최근 열린 삼성 사장단협의회 강연을 통해 "닌텐도는 재무 유연성과 인적 자원 및 기술을 포함한 소프트 경쟁력이 뛰어난 초일류 기업"이라며 "경제 위기 속에서도 신규 시장과 고객 공략을 강화하고 혁신 제품 출시로 시장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 닌텐도 DS와 닌텐도 위
닌텐도가 만든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와 가정용 게임기 '위(wii)'는 진화형 제품이다. 즉, 현재 단계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가족용 오락도구로 거듭나고 있다.
▦닌텐도 DS
닌텐도 DS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2개의 화면이다. 케이스를 열면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터치 스크린이 있다. 여기에 글씨를 쓰거나 화면을 건드려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화면을 위, 아래로 나눈 것은 양쪽에 각기 다른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쌍방향성을 염두에 둔 구성이다. 실제로 닌텐도 DS는 같은 기기끼리 전파를 이용해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접속이 안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닌텐도는 지난해 11월에 '닌텐도 DSi'라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며, 디지털 카메라가 달려 있어 영상 촬영 및 영상 대화가 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 판매량은 166만대. 미국, 유럽, 호주는 이달 중 발매 예정이며 한국은 아직 미정이다.
▦닌텐도 위
TV에 연결해 즐기는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 위는 이용자가 공을 발로 차거나 던지는 시늉을 하는 등 동작을 취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게임의 현실감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
반면 업계에서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3'나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360' 등 경쟁사들의 가정용 게임기보다 그래픽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소니와 MS가 가정용 게임기를 통해 인터넷으로 영화를 전송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위의 멀티미디어 기능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를 만회하고자 닌텐도는 올해 안에 인터넷으로 영화를 전송받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워너, 디즈니 등 미국 대형 영화사들도 새로운 창구가 열려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닌텐도 위는 경쟁사 제품들과 달리 영화를 저장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가 없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전송받으며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데, 중간에 끊기면 대책이 없다. 또 PS3와 엑스박스360에 비해 고화질(HD) 영상을 지원하지 않는 점도 인터넷 영화 서비스에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경쟁업체들이 아닌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의 말처럼 시장 확대에 주력해 온 닌텐도가 이 같은 과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지 관심을 끌고 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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