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집이나 사무실에 방문하면, 주인이 차를 준비하러 가고 혼자 남게 될 때가 있다. 내 눈은 자동으로 그 공간의 책들을 탐색한다. 그의 '관심 궤적'이 느껴지고, 일종의 '추천 도서 목록'이 작성되는 흥미로운 순간이다. 내 책들과 많이 겹치면 공감대가 보여 흐뭇하고, 이른바 '저주받은 명저'를 공유한 경우엔 깊은 대화를 주고받은 기분마저 든다.
책장은 말 없이도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책을 살 때 고민을 쓰고 돈을 쓰고, 읽을 때 시간을 쓰고, 소장하느라 공간을 쓰고, 이사 때마다 솎아내느라 선택과 수고를 또 쓴다. 그러니 주인과 짝을 이룬 고유한 이야기가 생겨날 밖에. 내 경우, 내 책장 이야기에 제목을 붙여보자면, 싱겁지만 '일과 함께 변화해온 20년 관심사(史)'인 것 같다.
내 책장의 초기 멤버는 미술과 디자인 관련서들. 대학을 마치고 서울로 옮겨와 편집대행사에서 일할 때, 하숙방의 밤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다. 그 전까지 자발적 독서는 온통 문학에 편향되어 있던 나는 <미술과 시지각> 등에 푹 빠져들면서 '비문학 책세계'에 입문했다. 미술과>
다음 순서는 '영화책'들. 그 중에서도 <영화의 이해> 와 <세계영화사> 는 각별하다. 영화기자로 일하기로 하고, 급한 마음에 '영화' 자 들어간 모든 책을 읽어치울 기세로 선배께 조언을 구했었다. "욕심내지 말고, 일단 이 책들을 반복해 읽는 걸로 시작해라"며 추천하셨다. 여백에 메모해가며 읽고 또 읽었다. 요즘도 그 책들을 펼쳐들면 영화에 불타올랐던 시절의 내가 보여 뭉클해지곤 한다. 세계영화사> 영화의>
그 다음 시기는 영화 마케팅을 시작하며 늘어난 트렌드나 마케팅 관련서들. 문학서들은 한동안 늘지 않다가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늘었다. 원래의 취향에도 누리며 사는 '여유'가 느껴져서 좋다. 앞으로도 내 책장은 새 책을 맞을 것이고, 일부 책은 떠나보내기도 할 것이다. 오래도록 내 곁에서 추억을 소근거려줄 책장 속 친구들이 살갑다.
곽신애 영화사 신씨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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