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목적고 신설 재검토, 자율형 사립고 지정 반대 등 잇딴 '폭탄 발언'으로 취임 전부터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자신의 견해들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이었고,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후보', '교수노조 원조멤버' 등 이름 앞에 붙는 '강성' 수식어도 적잖이 의식했다.
특히 최근 특목고 관련 언급이 가져온 파장 때문인지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 여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취임 후 밑그림을 공개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할 말은 많지만 교육감 자리에 정식으로 앉을 때까지는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 중심의 처방이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내년 선거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1년 2개월의 임기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하겠다"고도 했다.
김 당선자는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은 잘못됐다"고 못을 박았다. 현 정부가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있고,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수원시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에 마련된 당선자 취임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2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김진각 사회부 차장
- 첫 진보 성향의 교육감 당선자여서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진보쪽 후보이고 진보를 대변한다고 언론에서 규정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 현장은 무너지고 있고, 교육 양극화가 사회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예전엔 돈 없는 사람도 교육만 잘 받으면 계층 이동도 하고 했는데, 이젠 갈수록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양극화의 아랫쪽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적어도 교육이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교육을 진보, 보수로 나눠서는 안되는 이유다.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났는데,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는 김 지사도 교육 정책엔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말했다."
- 특목고 신설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한가.
"사실 특목고는 사회적으로 무리가 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입시학원화 문제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국어고의 경우 외국어 관련 인재를 양성한다는 원래 목적과 달리 변칙 운영돼 왔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이다. 그래서 특목고 신설을 확대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특목고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특목고 30개 중 18개가 경기 지역에 있다. 경기도에 전국 학생수의 20%가 있는데 특목고는 60%를 갖고 있는 것은, 일반고에 배분돼야 할 자원이 특목고에 뺐긴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특목고가 설립 취지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고 사회문제가 없었다면 그 필요성은 인정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 점검이 이뤄질 때까지는 (신설을) 동결하는 게 당연하다. 취임하면 당장 경기지역 모든 외국어고를 대상으로 시설, 교과과정, 입시요강, 운영, 재정 조달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 고양ㆍ화성 국제고 신설 재검토 방침에는 변화가 없나.
"현재로서는 국제고 신설이 된다, 안된다고 명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다. 아직 취임 전이라 구체적인 현황 파악도 시작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특목고가 설립 목적을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존재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 자율형 사립고 지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데.
"정부가 자율형 사립고를 지정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사학에 자율성을 주고 평준화를 보완하는 수월성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목적에 맞게 운영되느냐 이다. 자율형 사립고가 교육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좀더 숙고해야 한다.
사학도 물론 건강하게 육성해야 하지만 공립고도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결과가 발표됐는데, 공립고보다 사립고의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0, 8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전됐다. 사립고가 훨씬 많은 것도 아닌데 그런 현상이 나타난 걸 보면, 교육이 어떻게 나가야 할 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선진국들은 고교와 대학을 거의 등록금 없이 다닐 수 있게 만든 나라가 적지 않고, 바로 그 부분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정된 교육 자원을 적절히 배분한다는 관점에서 자율형 사립고 문제도 발전적인 방식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거부할 작정寬?
"한날 한시에 모든 학생들이 치르는 일제고사 식은 반대한다. 10월 실시되는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 주최인데, 정부 주관의 평가를 거부하겠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선진교육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고사 식으론 곤란하다. 일제고사 식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결과를 선다형 평가로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기업과 시장은 창의력을 갖춘 인물을 요구한다.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잠재력을 측정받을 수 있는 방식의 평가가 필요한데, 일제고사 식 평가는 오히려 창의력을 훼손할 뿐이다. 순위를 매기다 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서열화 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내몰리게 된다.
따라서 평가방법을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팀제 수업, 토론 교육, 자기계발 등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평가가 창의력을 측정하는 쪽에 맞춰져 있지 않으면 창의력 교육의 성과는 유야무야 되고 만다."
- 일부 비평준화 지역을 평준화하겠다는 공약은 예정대로 추진하나.
"광명, 안산, 의정부시 등 3곳에서 그동안 평준화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시민들도 자율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평준화를 추진해왔다. 평준화를 하려면 교육환경 여건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가 따져보고 주민들 요구도 살펴야 하는데, 이 세 지역은 이런 부분들을 일단 충족시킨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평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런 지역 분위기를 끌어안으면 된다. 평준화 환경 여건을 고려하고, 현장 요구를 보완하면 차별 없는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육청 내부 논의 과정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평준화는 교육청 혼자 판단해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민 반대가 많으면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 왜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반대하나.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골자는 자율과 경쟁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경쟁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적절한 경쟁이 필요한 게 맞다. 다만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면이 있다. 현행 교육정책은 정글법칙이 작용하는 경쟁체제를 만드는데 너무 집중돼 있다.
반드시 의도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런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학교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당선자가 이 대통령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대안이라고 하는 견해에는 동의하나.
"현 정부 교육정책의 문제가 누적돼 나타나는 현상을 해소해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해온 것도 정부의 교육정책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문제도 있었고 경기도도 그런 문제가 누적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공교육을 충실히 하고, 학교 교육을 차별 없는 교육으로 정상화 시키는 게 기본 방향이다. 정부도 기본적으로 공교육과 학교 현장이 건강하게 발전하길 바란다고 본다. 학교가 다양해지고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게 정부 의도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문제가 나타나고, 또 누적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걸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 일각에서는 '전교조 교육감'이라는 말도 있는데.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도의 200여개 중도 시민사회단체가 '범 도민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교육감 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서 추천한 후보라고 표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느 한 단체의 후보라고 한다면 의도가 투명하지 않다고 본다. 의식적으로 규정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전교조를 비롯한 여러 교원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논의하고 수용할 것이다. 전교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얘기도 들을 것이다. 이들 교원단체 모두 중요한 교육 주체이기 때문에 공교육을 살리려면 이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 교원평가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합리적인 교원평가제는 해야 한다. 다만 교사 평가와 관련한 부분도 교육자치인 만큼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평가 시스템과 구체적인 평가표를 만들어 실시해야 한다. 특히 합리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평가 결과를 인사와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교수 종합평가가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인사와 연계시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평가시스템 도입에 따른 저항을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야 하고, 이런 점에서 시도교육청도 함께 노력할 것이다."
● 김상곤 당선자는
한신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 민주화 운동과 교수 노조 활동에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1971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으나 그 해 10월 교련반대 시위에 앞장섰다가 제적된 후 강제 징집됐다.
87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결성, 89년 전국교직원노조 교수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95년에는 민교협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3년 동안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7년부터는 사단법인 비정규노동센터 대표 및 이사장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 앞장서왔다.
▲1949년 광주 생(60세)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박사 ▲민교협 공동의장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정리=강희경 기자
사진=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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