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 들어 처음으로 21일 개성공단에서 이뤄진 남북 당국 간 접촉에서 북측이 통보한 내용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절묘하다. 고심 끝에 꺼내 든 카드로 보이며, 특히 그 시점이 절묘하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고, 우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선언이 임박한 상황에서 북한이 내놓은 대남 요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 '개성공단사업과 관련한 중대 사안'을 우리측에 통보하면서 과연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한 것일까. 진정한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가 북한의 요구 사항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듯이, 북한의 진정한 의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단 미래' 근본적 해결 의도
이런저런 생각을 종합하면, 지금 당장 성급한 판단과 평가를 내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게 보인다. 추가 접촉과 대화 등을 통해 좀 더 정확히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북한이 현찰을 챙기는 데만 급급하고 있고 PSI 전면 참여 문제는 큰 관심이 없더라는 식의 일면적이고 단선적인 분석은 어딘지 옹색하다.
북한은 임금협상의 조기타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임금 인상으로 단기간에 챙길 수 있는 현금 수입 규모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기숙사 건설 등이 조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개성바깥 지역 근로자의 추가 공급도 어려운 상태다. 또한 개성공단은 다수의 우리 중소기업이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선택한 투자 유망 지역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는 곳이 아닌 것이다.
언뜻 보면 북측이 개성공단 사업을 위해 남측에 준 제도적 특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공식 메시지는 남쪽 기업들이 알아서 스스로 공장 문을 닫으라는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 입주 기업의 규모와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북측 요구대로 노동과 토지 비용이 올라간다면 생산원가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쳐 개성공단 자체의 경쟁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북한도 지난 6년 동안의 다양한 견문을 통해서 잘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스스로 만들어 합의한 각종 법규와 계약을 재검토하자고 요구한 것은 남측과의 협상을 통해 개성공단의 발전이 걸린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개성공단사업은 1만 5,000명의 북측 근로자를 수용할 수 있는 숙소 건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머지 않아 한계에 봉착하게 되어 있다. 우리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도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의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으면 더는 버티기 어렵다.
북한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의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려는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따라서 북한이 23일 접촉에서 "남측은 이에 필요한 접촉에 성실히 응해 나와야 할 것임"이라고 밝힌 대목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
명분보다 실리 좇는 결단을
이제 공은 우리쪽에 넘어온 듯하다. 궁극적으로 개성공단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진정으로 개성공단을 우리 중소기업 생존의 돌파구라고 판단한다면, 나아가 정치 군사적 측면은 물론이고 중장기적 대북 통일정책의 관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다면, 잡다한 체면이나 명분보다 실리를 좇는 방도를 대범하고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옳을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연구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