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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통해 희망 찾은 심윤보씨 "이 새싹들처럼… 움츠린 어깨 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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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통해 희망 찾은 심윤보씨 "이 새싹들처럼… 움츠린 어깨 폈어요"

입력
2009.04.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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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모을 돈이 어디 있어? 다 살만 한 사람들 얘기지."

지난해 10월 경제교육 전문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문을 두드릴 때만 해도, 심윤보(44)씨의 심정은 그랬다. 한 달 벌이라야 고작 90만원, 세 식구 밥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그런 그가 요즘은 돈 모으는 재미에 산다. 벌써 통장에 300만원 넘는 돈이 모였다. 에듀머니의 '저소득층 경제교육'을 통해 가계부 쓰는 법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착실히 실천한 결과다. 이 돈을 더 불려 어려운 사람들끼리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도 생겼다.

심씨는 원래 미용사였다. 일본 도쿄미용학교를 수료한 그는 서울 도봉구에서 아내와 함께 제법 큰 미용실을 운영했다. '사장님' 소리 듣던 그의 삶은 1997년 아내가 암으로 5년간 투병 끝에 세상을 등진 뒤 휘청거렸다.

병원비 대느라 가세는 기울었고, 영업도 어려워졌다. 2003년 새 아내를 맞고 이듬해 아들 현성이를 얻어 다시 삶의 기쁨을 맛보는 듯 했다.

현성이 난 지 1주일, 선천성 심장병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그 후 아들은 꼬박 30개월을 병원에서 살았고, 심장을 세 번이나 열었다. 병원비만 1억3,000만원. 병원을 지키느라 미용실을 자주 비우다 보니 손님들도 발길을 돌렸다. 결국 3,000만원 빚만 남긴 채 미용실 문을 닫았다.

심장재단과 병원의 도움으로 병원비가 크게 줄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던 심씨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 사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2005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처지라 교대 근무가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저축은커녕 사납금 채우기도 힘에 겨웠다. 결국 지난해 말 4년 만에 택시 운전을 접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 점차 지쳐가던 심씨에게 지인이 에듀머니를 소개했다. '경제교육' 하면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를 흔히 떠올리지만, 에듀머니는 잘 버는 것보다 '잘 관리하는 법'에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착한재무설계'다. 서민들에게 가계부 관리, 저축하는 법, 부채 관리 등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줘 건전한 재무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심씨는 지난해 10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에듀머니 사무실을 찾았다. 첫 상담에서 용기를 얻은 그는 올 2월부터 각각 주 1회씩 6주간 진행되는 '저소득층 경제교육'과 '창업교육' 과정에 등록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수강료를 "거저는 없다"는 인식을 심어줄 정도만 받는다. 그는 "경제관념을 새로 갖게 된 강의 내용도 좋지만, '착한재무주치의'로 불리는 전문가와 함께 우리 집 경제 상황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고칠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특히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심씨의 '재무주치의'는 우선 그에게 모든 지출을 기록하게 했다. "무턱대고 아낀다고 될 일이 아니라, 허투루 새는 돈을 찾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수입은 마포지역자활센터의 영농사업장에서 일하고 받는 자활근로소득과 자치단체 보조금 등을 합쳐 월 90만원. 이중 고3인 딸의 학원비(30만원), 신용회복을 위한 분할채무 추징액(8만7,000원), 아들 어린이집 비용(6만원), 교통비(3만원) 등이 꼭 필요한 지출내역으로 결정됐다. 나머지는 생활비와 저축에만 쓰도록 원칙을 세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돈이 모였다.

창업교육도 착실히 받으며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차근차근 세워갔다. 때마침 기회가 왔다. 마포자활센터에서 심씨가 일하고 있는 '풀꽃사랑' 영농사업장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 자칫 일터를 잃을 뻔했던 그는 거꾸로 이 사업장을 경영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자본금 한 푼 없이 덤빌 일이 아니었지만, 길이 생겼다. 영농사업장 터를 빌려준 땅 주인이 "워낙 성실하게 일해 눈여겨 봐왔다"면서 그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화초를 키우고 나중에 수익이 나면 나누자는 조건이었다.

23일 오전 경기 고양시 원당동의 '풀꽃사랑' 영농사업장을 찾았을 때, 심씨는 한창 기린초 모종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옥상녹화에 주로 쓰이는 청솔, 클로버, 각시둥글레 등 지피식물(땅을 낮게 덮는 식물)을 재배한다.

심씨의 사업계획서에는 화초 재배와 함께 주말농장 운영도 들어있다. 정부 보조금 받고 하던 일을 내 사업으로 키워가려면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하지만 그는 5월 말이면 사업 인수인계를 받아 '사장님'이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화초를 돌보는 손길도 더 바빠졌다. 그는 "내 손으로 키운 화초를 출하할 때마다 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직 남은 빚 1,200만원을 빨리 갚고, 신용을 회복해 자식들에게 떳떳한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회적 기업에서 받은 도움을 또 다른 사회적 기업을 일으켜 되갚겠다는 꿈까지 이루려면 한참 더 가야겠죠? 끝까지 해볼 겁니다. 자신 있어요."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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