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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과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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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과신의 함정

입력
2009.04.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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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에게 조수석을 내주고 뒷자리로 물러앉을 때는 기뻐서 콧노래가 다 나올 뻔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조수석에 앉아 지도책을 들여다보느라 골몰해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국도와 지방도로, 인터체인지 등을 찾아 더듬거렸다. 차가 급정거라도 할라치면 애써 찾아 손가락으로 짚어놓은 도로를 잃어버려 다시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우리 나라 국토가 비좁다고? 지도 속의 우리 땅은 넓디넓었고 핏줄처럼 가느다란 도로들로 뒤엉켜 있었다.

길치인 남편은 모르는 길을 갈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왼쪽, 직진, 멈추고. 일차선으로 붙여. 인간 내비게이션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그 성가신 일을 '내비'가 도맡아주게 된 것이다. 내비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정중했다. 나처럼 "또 몰라? 바보 아냐?"라고 지청구를 주지도 않았다. 경로를 계속 이탈하는데도 화내지 않고 친절히 다른 길들을 찾아봐주었다. 혼자 밤길 운전할 때 내비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예의바른 후배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200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오, 라는 안내에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섰는데 그 사거리에서는 좌회전 금지였다. 내비가 인도하는 길만 믿고 갔다가 차량이 바다로 전복되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내비든 사람이든 과신은 금물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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