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아파트 경비직 이야기다. 그 분은 주민들을 대할 때 항상 웃으시고 평안을 선사해주는 일명 '보살' 아저씨다. 단지 곳곳을 쓸고 닦고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신다. 넓은 평수 단지는 소위 '좋은' 일자리로 통해서 다들 그 쪽으로 배치받고 싶어한단다.
그 분의 일상은 그런 배경에 상관없이 주민들의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지키기 위한 정성스럽고 고단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의 자식들이 외국에 나가 산다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자세한 삶의 이력을 알지도 못한다. 주민들은 현재에 충실한 아저씨의 바로 그 모습 그대로를 좋아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저층 어느 집에 도둑이 들어 꽤 많이 털렸다. "열 명이 한 도둑 못 지킨다"고는 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그 분이 문책을 당했다. 자동차로 혼잡스러운 아파트 정문 앞이나 노인정에서 속칭 '뺑뺑이를 돌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가슴 아팠다.
집을 털린 당사자 가족, 어깨 처진 아저씨에게 가만히 우유를 쥐어주고 사라졌던 사람, 시원한 물 한 모금 축이게 해주었던 사람들이 나서서 아저씨 의 원상 복귀를 위한 서명을 시작하고 대다수 주민의 호응을 얻어 관리사무소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규정상 안 된다고 했지만 "우리가 그 분을 원해요"라는 주민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아저씨는 원래 일터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아저씨는 또 다른 규정상 정년이 되어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말이 돌았다. 주민들은 또 다시 정년 1년 연장 서명에 돌입했다. 365일은 금방 지나갔고 다음 해에도 계속된 서명이 또 효과를 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렇지만 그 분에게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기운 내어 다른 일을 찾아보게 도울 수 있으리라는 것을. 사람이 희망을 갖게 되는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가가 찰나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자리가 나면 누군가가 채울 것이다. 도둑도 제발 저려 근접하지 못할 위용을 지닌 사람이 있기야 할까 만, 웬만큼 기능적으로 대치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사람들이 최대한으로 지켜주는 덕분에 아저씨는 여전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하신다.
이 일은 그 지역에서 몇 십 년 동안 애면글면 돈을 벌었던 상인들이 주축이 된 큰 평수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흥미롭다. 손과 함께 마음이 큰 사람들, 어려운 처지에서 시작해서 갖은 고생 끝에 어느 정도는 누리고 살지만 "혼자 잔치에 신명 날 리 없음"을 삶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현명한 판단과 행동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좋은 의미로 보통 극성스럽지 않은 사람들이 풀뿌리 주민 자치의 서막을 올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친구 말이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다른 아저씨에게 일어난 변화가 참 재미있단다. 그 분은 손재주가 좋아서 가구며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판매하여 꽤 많은 부수입을 올린다. 그런데 주민들이 '보살' 아저씨를 더 좋아하고 그렇게나 두텁게 감싸주는 것을 보고 원인분석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건조했던 무표정의 아저씨가 이제는 제법 웃음을 띠고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주시고 더 친절해 지셨다고 한다.
나는 이 작은 사례를 통해 아파트 경비원의 경쟁력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더 나아가 우리가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을 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당사자의 조건과 지켜줄 수 있는 이쪽의 능력에 대해서도 음미해보게 된다.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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