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봉 지음/부키 발행ㆍ696쪽ㆍ2만3,000원
'주역(周易)'만큼 해석이 분분한 책도 없다고 한다. 괘(卦)를 만드는 산술의 복잡함은 물론이거니와, 태극기의 네 귀퉁이에 있는 각 부호 두 짝을 한 쌍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64괘, 그 괘의 형상을 만드는 한 일(一)자 모양의 막대기인 양효(陽爻), 한 일 자의 가운데가 끊긴 모양인 음효(陰爻) 등의 뜻을 풀이한 괘효사에 대한 주석이 3,000여년 동안 크게 변천하고 난립한 탓이다.
<인문으로 읽는 주역> 은 공자와 제자들이 썼다는 '십익(十翼)', 정약용이 쓴 '주역사전(周易四箋)을 비롯한 고금의 뛰어난 주역 해석서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석을 취해 64괘 괘효사의 본뜻에 접근하려고 시도한 책이다. 저자인 신원봉 영산대 동양철학 담당 교수는 "원래 좋은 해석서 한 권을 번역하려고 했으나, 잘 됐다는 책들조차도 64괘 괘사와 효사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 달랐다"며 "무엇보다도 원래의 뜻을 살리고 일관된 해석의 틀을 구축하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인문으로>
최고의 주석을 취합하면서 저자가 시도한 또 하나의 작업은 고대 한자에 대한 문헌적 고증과 고고학적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일례로 사괘(師卦) 육사효(六四爻) '사좌차, 무구(師左次, 無咎)' 중 '좌차'에 대한 주류적 해석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때를 기다린다'거나 '물러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1970년대 중국 후난성의 한나라 시대 묘에서 발견된 '백서본' 주역을 받아들여 '좌'를 '보좌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120~121쪽)
단순하고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된 주역의 뜻을 더 풍부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논어' '맹자' '주례' '시경' 같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적절한 예를 끌어와 효사의 뜻을 보완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새 왕조가 성립되면 본격적인 교화가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을 다룬 몽괘(蒙卦) 괘사에는 '처음 물으면 일러주나 재삼 물으면 모독하는 것이니, 모독하면 일러주지 않는다(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유치함을 다스려 가는 교육의 측면을 밝힌 것으로, 저자는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공자가 '논어'의 '술이'편에서 말한 '나는 분발하지 않는 자는 열어주지 않고, 끙끙대지 않는 자는 계도하지 않으며…'처럼 유사한 문화적 인식을 드러내는 문구를 인용해 보완설명을 한다.
주역은 어떤 책인가? 고금의 주석을 취사할 수 있을 만큼 주역을 공부했다는 저자는 "맹신하고 남용하면 매우 위험하지만, 잘 이해하고 적절히 쓰면 삶이 지혜를 계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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