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3일 개막을 앞두고 한창 막바지 준비 작업중인 '2009 한국바둑리그'에 뜻밖에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랭킹 1위 이세돌이 지난 20일 오후 한국기원 기전팀에 전화로 "개인 사정 때문에 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해 온 것.
이미 리그에 출전할 7개팀이 확정되고 각팀 감독들이 지난 16일 1차 회의를 갖고 자율 지명 선수 선발 및 드래프트 순번 추첨까지 마쳤다. 따라서24일부터 예선전에 들어가기로 돼 있던 순탄한 대회 일정이었으나 난데없는 폭탄 선언이 터진 셈이다.
그동안 이세돌의 리그 참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대회 일정을 진행중이던 한국기원과 바둑TV 등 주최측에서는 뜻밖의 소식에 화들짝 놀라 한상렬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들과 양재호 유창혁 등 선배기사들까지 나서 진의 파악 및 설득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끝내 이세돌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 결국 이세돌 없이 올해 바둑리그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프로 기사의 특정 기전 출전 여부는 원칙적으로 기사 개인의 의사에 달려 있지만 이번 사태는 랭킹 1위 이세돌이 해당자인데다 리그 개막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파장과 후유증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리그 일정이 상당 기간 연기 또는 파행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일단 24일부터 29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예선전이 무기한 연기됐다. 어쩌면 이세돌의 출전을 전제로 해서 지난 16일 가졌던 사전 선수 선발식을 다시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이세돌이 빠지면 랭킹 25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시드 배정자 명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존 명단을 기준으로 한 보호 선수나 자율 지명 선수 선정이 모두 원천 무효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당초 5월6일로 예정했던 최종 선수 선발식이나 13일의 개막식 등 향후 리그 일정이 줄줄이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수는 올해 처음으로 리그에 참가한 신안태평천일염의 거취다. 이세돌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이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바둑팀을 창단, 올해 바둑리그에 출전키로 한 배경에는 '내 고장 스타' 이세돌을 앞에 내세워 자치 단체와 향토 기업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는 건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신안팀은 이세돌을 반드시 주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그동안 무척 공을 들였다. 다른 팀들도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드래프트 1번을 신안팀에 양보하는 등 전폭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한데 이세돌이 리그에 불참한다면 신안팀으로서는 리그 참여의 명분과 실리가 많이 약해지는 셈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세돌 대신 친형 이상훈을 자율 지명 선수로 신안팀에 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 지 쉽사리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바둑리그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지는 사태가 초래될 우려도 없지 않다.
■ 이세돌 인터뷰/ "得보다 失 많아 포기…고향팀 신안 마음에 걸려"
이세돌은 자신의 바둑리그 불참 결정 이유를 한 마디로 "바둑리그에 출전하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명백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바둑리그의 빡빡한 경기 일정과 경직된 운영 방식, 중국리그와의 대국료 격차 및 현행 레이팅 제도에 대한 불만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세돌은 23일 오후 7시부터 한국기원 1층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1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8강전에 출전, 박영훈에게 불계승을 거두고 가장 먼저 4강에 진출했다. 이세돌은 대국 후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바둑리그 불참 의사를 "한 달 전쯤 이미 주최측에 밝혔다"며 전혀 번복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 바둑리그 불참 이유가 뭔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바둑리그 출전이 여러 면에서 내게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두 해 전부터 바둑리그 참가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중인 새 레이팅 제도 아래서는 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레이팅제도는 기전의 규모나 타이틀 획득에 대한 가산점이 축소된 대신 대국 승패에 따른 점수 등락 폭이 커졌다.)
- 일부에서는 중국리그 출전에 따른 일정 불편이나 대국료 차이 때문으로 보는데.
"그런 점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작년에 이세돌은 중국리그에서 이겼을 경우에만 판당 1만달러를 받았다. 올해 한국바둑리그 대국료는 판당 승자 150만원, 패자 50만원이다.)
- 인터넷에는 한국기원과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그런 것 없다. 그동안 이런저런 추측성 보도가 있었지만 거의 다 사실이 아니다."
- 한국리그에 불참할 경우 중국리그에 주력할 계획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의 경우 연간 8~12판 두기로 계약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이세돌은 작년에 중국 갑조리그에 8차례 출전해서 전승을 거뒀다.)
- 앞으로 다른 국내 기전에도 불참하거나 기권하는 경우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대국 일정이 겹친다거나 컨디션이 아주 나쁘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이세돌은 지난해에도 중국리그 일정과 겹쳐서 물가정보배 본선 대국을 기권한 적이 있다.)
- 리그 주최측에서는 불참 통보를 너무 늦게 했다고 주장하는데.
"지난 3월 중순께 '만일 바둑리그 규모가 축소되면 불참하겠다'는 뜻을 기전 관계자에게 밝힌 바 있다. 한데 그동안 주최측에서 이를 무시하고 그냥 일정을 진행했다. 그래서 며칠 전 한 번 더 내 의사를 전한 것이다." (한국기원에서는 지난 16일자로 소속 기사들에게 한국바둑리그 개최에 따른 대국 통지서를 발송, 본선 시드 배정자 25명 가운데 불참할 사람은 20일 오전 11시까지 기원에 통보해 달라고 했다. 이세돌은 20일 오후 6시30분께 기전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불참 의사를 전했다.)
- 이번 불참 결정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고향 팀인 신안태평천일염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리그 불참 결심은 이미 신안팀 창단 이전부터 했던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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