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돈을 많이 주겠다는 후보를 찍을 겁니다. 800달러 밑으론 어림도 없어요."
6월 레바논 총선을 앞두고 베이루트 남부에 사는 실업자 후세인(24)은 당당하게 이런 정견(?)를 밝혔다. 공립학교 교사 월급이 700달러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 후세인의 기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 역사적으로 주변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레바논이 총선을 앞두고 다시 열강의 힘겨루기 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와 다른 점은 무기 대신에 유권자를 매수할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것.
NYT는 현재까지 유입된 자금이 수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레바논 인구가 고작 400만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레바논 사람들이 선거를 성탄절같이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브라질, 호주로 나가있던 수천의 이주 노동자들도 고향으로 돌아올 정도이다.
총선이 돈 잔치로 변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이란의 강력한 후원 속에 헤즈볼라가 약진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가 친미 온건파를 지원하며 맞불 작전에 나섰다. 이후 유력 후보의 중도사퇴, 후보 방송 출연 등에 천문학적인 돈이 살포됐다. 가부장적 봉건질서가 유지되는 시골 원로들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목돈을 요구한다. 이렇게 얻은 자금 중 일부는 사회간접시설 건설이나 주민복지에 사용되면서,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가 봉건 질서를 강화하기도 한다.
레바논 정부는 이번에 처음 선거비용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감시망이 허술해 어떤 후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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